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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 우리들의 기도 - 5. 나라이 임하옵시며 미디어선교팀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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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

본 문 : 마태복음 69-10

제 목 : 우리들의 기도 ? 5. 나라이 임하옵시며

 

한 때 저는 주간 필라에 글을 쓰던 인연으로 원불교 교무라는 분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한참 사람의 마음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고, 그 분 또한 자신의 관점에서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던 터라 좋은 만남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교무님이 제게 기독교 예술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워낙 많은 예술 분야의 유산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수도자들의 묵상과 훈련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제게 묻기를 저의 신앙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 미술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해달라는 겁니다. 마음이 좀 답답했습니다. 이제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이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 미술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영향을 받거나 크게 은혜를 받았던 예술적 경험 또한 없습니다. 제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그 분이 자신이 아는 기독교 미술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 조금 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날 만남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고민이 좀 됐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신앙을 배우되 책을 통해서 배우고 교회를 통해서 배우기는 했지만 미술 작품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경험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기독교 예술을 통해 크게 영향을 받거나 은혜를 받은 일이 있습니까?

 

사실 그분의 질문을 받고서 저 자신에 대해 변호하기를 미술 작품 한 두 개를 가지고 어떻게 복음의 진리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참 놀랍고 큰 영적인 경험을 한 미술 작품을 통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보여드리는 바로 이 동상입니다. 여러분이 한번쯤 가보셨을 Norristown에 있는 Human Service Center로 가는 길목에 카톨릭 교회당의 입구 정면에 붙어 있습니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보고 저게 뭐지....?’ 하고 다가섰다가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왔고 우리 교회 주보의 표지로 한동안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 , 못과 성령

 

여러분은 이 동상을 보고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아니 무엇이 가장 먼저 눈에 띄십니까? 제게 있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비둘기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우리를 위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걸려 있는 예수님이 한 손을 못 박힌 채 다른 한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세상에 보내시는 장면입니다. 하나의 동작으로 참 많은 것을 상징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손을 고정시키고 있는 못과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이 정죄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자 왕으로서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 하지 못하시도록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형틀이 묶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이 못 박힌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치욕을 당하는 세상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그 못을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못 박은 죄인들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른 한 손을 뻗어 세상으로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성도 여러분! 비둘기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그것은 평화이면서 사랑이면서 곧 성령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못 박을 수 없습니다.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자유롭게 이 세상을 날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것입니다. 세상이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십자가 위에 매달린 예수님, 그리고 그의 양 손에 있는 못과 비둘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와 교회에게 신앙이란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들에게 임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그 작품을 통해서 충격과 은혜를 받았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장면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가 한국어로 된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가지는 의문점 중 하나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표현입니다. 나라가....”, 혹은 나라에....”라고 말하지 않고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번역했을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주격조사로 ....’를 사용합니다. 받침이 있는 주어에는 를 쓰고, 받침이 없는 주어에는 를 씁니다. 헷갈리십니까? ‘나는...’이라고 하고, ‘선생님은...’이라고 하죠. ‘우리가...’라고 하고,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네 주격 조사에 특별한 존칭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존칭이 필요할 때는 께서....’ 정도를 사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이 번역될 당시에는 주격조사에 격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3인칭 주격을 사용할 때 그것이 인격이 없는 경우 께서...’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께서 임하옵시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말하면 평칭의 어감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반적인 문법의 틀을 깨는 받침이 없는 주어에 조사 를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라고 말하지 않고,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했을 때 존칭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사도 임하시며...”가 아닌 존칭을 사용하여 임하옵시며...가 된 것입니다.

 

물론 영어 성경의 표현은 좀 더 단순합니다. 현대어로 번역된 NIV 성경은 “your kingdom come”이라고 되어 있고, 다소 고어적인 번역인 KJV “Thy kingdom com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성경을 번역할 당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기를 원했고, 주기도문에 그것을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경의 어감이 더 좋습니다.

 

, 그렇다면 이 기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성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신앙을 설명하면서 자주 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국문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들어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한 때 이단들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팔기도 했습니다. 구원의 문,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옳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천국의 입성합니다. 언제 말입니까? , 죽음 이후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성경이 설명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주 이런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9)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의지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가운데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나라를 임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향한 결단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에 의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사실 이 기도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세 가지 기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세 기도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 나라와 뜻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결국 이기도의 관심은 기도하는 성도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제가 드린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 가운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임하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사는 세상, 나의 삶 속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 내가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겠다는 믿음과 의지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전반부, 하나님을 향한 세가지 기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나와 교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결국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기로 다시 결단하고 마음을 다지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다.

 

여러분, 그런데 과연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살아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을까요?

 

먼저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들에게 임하였다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이미 임한 것일까요?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대답을 한다면, 왕이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왕정 국가에서 왕은 곧 나라입니다.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왕의 의지와 선택으로 왕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그 왕은 세상의 모든 나라의 왕들이 다스리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의 왕권을 행사합니다. 세상의 왕은 높아지고 군림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은 낮아지고 섬기고 헌신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왕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백성을 희생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임당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왕권은 왕좌 위에 놓여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권은 지금 십자가 위에 있습니다. 그 왕이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오늘날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요,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이 그 나라의 좋은 백성입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많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세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합니다. 연약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세상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책망하거나 징계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용서하고 용납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말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십니다. 그 장면이 바로 우리가 처음 보았던 이 그림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사진)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로마 교회에 권면하시기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성도와 교회의 삶입니다. 그것은 한 손은 못 박힌 채 다른 한 손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모습으로 상징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견디고 이겨야 할 삶의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믿으십니까?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였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평생 셀 수 없을 만큼 고백하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이 기도, 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겠다는 이 결단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과 발이 못 박히는 고난의 선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그래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구속할 수 없는 자유의 영을 주시고,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손을 뻗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들어갈 그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증거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초대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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