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9. 우리들의 기도 - 6. 나라이 임하옵시며(2) | 미디어선교팀 | 2013-06-22 | |||
|
|||||
2013. 6. 9. 본 문 : 마태복음 6장 9-10절 말씀 지난 주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눈 말씀의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지난 주 드렸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까?” 두 가지가 함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는 장면을 비유로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들 모든 믿는 성도들의 부활과 함께 참된 소망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더불어 주기도문의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세 가지 기도는 각각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기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그 나라와 뜻을 기도하고 있지만, 결국 이 기도는 성도와 교회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들은 내가 기도를 통해서 나의 소원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는 나와 교회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나와 교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결단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이번 주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 과연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 증거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가일이가 제게 약속을 어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침 그녀석이 웃통을 벗고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손바닥으로 등짝을 때려주려고 이리 오라고 했습니다. 눈치를 챈 가일이가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건 abuse예요. 한국 거라고요.” 가일이가 제게 등짝을 맞았을까요? 안맞았을까요? 저는 하나님 나라의 현장성과 현재성을 이해하는데 우리 이민 사회의 생활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 미국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언어일 것입니다. 또 다른 문화일 것입니다. 한국과는 다른 법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적인 삶에 익숙한 자녀들과 한국적인 삶에 익숙한 부모와의 세대 간의 격차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우리는 이민 사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장성, 그리고 현재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지켜야 할 삶의 원칙, 즉 천국 시민들이 지켜야 할 새로운 질서와 법에 대해서 생각하려 합니다. 가끔 가정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 중에서 자녀들과 갈등하는 중에 어이없는 상황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우리의 자녀들과 한국에서 자녀로 성장했던 부모들의 경험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소위 Child Abuse로 어려움을 당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자녀들 또한 설마 일이 그렇게 크게 될지 몰랐다고들 말합니다.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다르고, 한국의 법과 미국의 법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왕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곧 그 나라의 법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곧 소위 산상보훈으로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이 첫 번째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들이 당연히 배우고 익히고 지켜야 할 삶의 원리와 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산상보훈은 크게 다섯가지 강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천국 백성이 추구하는 참된 복 그 첫 번째가 바로 이 땅에서 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추구하는 참된 가치가 어디 있는가? 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팔복’이라 부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으로 시작하는 말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많이 가져야 합니다. 오래 살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고, 능력을 뽐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하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의 원리는 다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이 세상의 악함에 대해 슬퍼할 수 있어야 하고,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의롭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하고, 마음의 깨끗하고 청결해야 하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화평하게 만들어야 하고, 핍박과 시련을 당하더라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 그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뜻대로 살기로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천국 백성의 상호 관계 두 번째 산상보훈의 내용은 이웃에 대한 우리들의 삶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5:43-45에서 잘 나타납니다. 읽어보실까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3-45) 세상의 법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법입니다.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법이란 할 수 있는가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입니다. 제가 어디 봤는지 모르겠는데, 미국을 여행하는 중에 고속도로 옆에 서 있는 입간판에 이렇게 크게 적힌 것을 봤습니다. “Buckle Up! It’s the Law.”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입니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예,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법과 질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해야 하는 것이고 하지 않았을 때는 적절한 법적인 제재가 있는 것입니다. 3. 천국 백성의 경제 원리 세 번째 산상보훈의 강조점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경제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어디에 나와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마 6장 31-34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읍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1-34) 천국 백성들의 삶의 Priority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성도와 교회를 흔들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입니다. 염려하도록 하는 것, 걱정하고 염려하는데 마음의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담대하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은 혹시 지나친 염려로 믿음과 순종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는 일을 경험하신 일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천국의 백성들에게 “하지 말라!”와 “하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에서의 삶의 필요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더욱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4. 천국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 네 번째 산상보훈의 강조점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6장에서 예수님은 먼저 기도자의 영적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6-7) 좋은 기도자의 영적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예,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하고 진솔해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들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많은 말로 화려하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교통하는 솔직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 6:9-13절에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5. 천국 백성들의 소통 방식 - 황금률 다섯 번째 산상보훈의 내용은 소위 ‘황금률(Golden Rule)’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 백성들의 소통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7장 1절과 12절에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12절의 강조가 보이십니까?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7장 1-12절의 황금률에 대한 말씀에 대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본문을 살펴보면 그 가운데 기도에 대한 말씀이 숨어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왜 황금률을 기록한 말씀의 중간에 기도에 대한 말씀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혹시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 “내가 드리는 기도마다 다 응답되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은 그런 기도 -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시고, 찾기만 하면 다 찾을 수 있고, 두드리는 문마다 활짝 열리는 그런 기도를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비결이 이 본문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황금률의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황금률의 기도란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황금률은 천국 백성들의 소통의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비판을 하기 전에 비판받는 상대방을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비판을 받는다면 참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판이 아닌 사랑과 긍휼로 대하기로 결정합니다. 평화가 이뤄집니다. 대접을 받고싶습니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대우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대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이뤄집니다. 천국의 백성들은 이렇게 소통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먼저 알고 느끼고 품습니다. 내가 느끼는 아픔을 그도 함께 느낄 것이요, 내가 가진 그리움을 그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먼저 내 마음으로 품고 이해하고 내 삶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 또한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어떤 기도가 무조건 응답될 수 있을까요? 어떤 기도가 구하기만 하면, 찾기만 하면, 두드리기만 하면 응답될까요?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황금률의 소통을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알아서 그 뜻대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황금률을 적용하면,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와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은 서로 만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뜻을 품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대해 하나님이 왜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들어갈 때 하나님이 왜 기뻐 들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마 7:7-8의 기도에 대한 강조가 주기도문과 함께 나오지 않고 황금률에 들어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교통하는 기도를 드릴 것을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 우리 성도와 교회는 이 기도가 응답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칙과 법에 우리의 삶이 익숙해져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삶의 방식에 익숙한 우리들, 변화와 성장을 거부하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영광이 우리의 삶에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