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1. 우리들의 기도 - 15. 악에서 구하소서(2) | 이응도 목사 | 2013-09-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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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마태복음 6장 9-13절 말씀 제 목 ; 우리들의 기도 ? 15. 악에서 구하옵소서(2)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이 기도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보실 것은 마 6:13절의 영어 본문입니다.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마 6:13)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빠져들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악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deliver해달라는 것입니다. 영어 본문을 보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delivery’라는 말,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말이지요. 언제 이 말을 사용하시나요? 피자를 ‘delivery’하고, 편지를 ‘delivery’하고, 설교를 ‘delivery’하고, 아기를 ‘delivery’합니다. 이 말은 결국 특정한 무엇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성도가 드리는 기도 또한 같은 개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악한 세상입니다. 세상의 ‘악’에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deliver’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하나 빠진 것이 있습니다. 성도를 악으로부터 건지셔서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입니다. 진리와 평강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악에서 우리를 구하셔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주십시오.”
이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1.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가 함께 Q.T하고 있는 사무엘상에는 다윗의 고난의 시대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난을 가장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에는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평안이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보실까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현재 만나고 있는 악과 하나님이 그를 어디로 deliver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있고, 원수의 목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악을 이길 수도, 넘어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어디로 구원해내십니까? 그는 여호와의 집,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영원히 거합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다윗에게 임했을까요? 1절이 비밀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내 인생에 어떤 고통과 시험이 와도, 어떤 무섭고 무거운 악이 나를 덮쳐도 나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합니다. 다윗은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의 때, 고통의 시대에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평안한 품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경험을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들
오늘 중요한 것은 과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도망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고비마다 사람들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심지어 사울왕의 아들이면서 다윗의 정적이 될 수도 있었던 요나단이 있었고, 사울왕의 딸이었던 미갈 또한 다윗의 편에 섰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도 다윗을 도왔고, 그 결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주에 함께 만났던 아비가일 또한 하나님이 준비하신 현숙한 여인입니다. 한 여인의 지혜가 다윗이 분노에 사로잡혀서 악을 행할 수도 있었던 가능성에서 다윗을 건져냅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을 사랑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다윗은 블레셋 땅에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왕이었던 아기스는 다윗의 용맹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블레셋 군대의 선봉에 세우려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원수의 나라 블레셋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다윗이 이겨야 할까요? 져야 할까요? 바로 이 때 하나님은 블레셋의 왕 아기스의 부하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습니다. 삼상 29:4-5에서 그들은 아기스 왕에게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왜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군대를 패배시켰던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만약에 다윗이 사울왕과 결탁하면 우리가 패배하게 됩니다. 다윗을 돌려보내십시오.” 결국 아기스왕은 다윗을 후방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해야 하는 절대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적들이 다윗을 악한 상황에서 구한 것입니다.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다윗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시험에 빠지고 악을 행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사람을 준비해주십니다. 사무엘을 준비하시고 나단을 준비하셔서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도를 준비해주셔서 서로가 악에 빠지지 않도록, 악한 삶을 살지 않도록, 악에게 지지 않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변을 한번 돌아보시겠습니까? 옆에 분들과 손을 잡아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해 봅시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이 움직이시다.
하지만 때로 우리가 만나는 악이 너무 강하고 커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도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출애굽의 소명을 가지고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양을 치던 노인이 되었고, 히브리인들은 노예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힘을 합치고 서로 도와도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이던 애굽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애굽이라는 거대한 악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요? “How could they be delivered from Egypt, the Evil Land to Canaan, the Promised Land?” 그들 자신의 힘으로 가능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악으로부터 deliver 하시는 방법은 그 사람의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먼저 하나님은 그 스스로가 믿음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여 악을 물리치는 장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이 힘을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조약돌 다섯 개를 들고 대장군 골리앗에게 달려가는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분노와 마음으로 싸움에 나가고 하나님은 그를 도우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힘으로 이기고 싶어도 안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악으로부터 피할 길을 준비하십니다. 그 악은 물리적인 위협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이 창과 칼을 피할 때 하나님은 늘 사람들을 보내셔서 도우셨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성도가 악한 삶을 선택할 가능성으로부터 성도를 지키십니다. 선지자를 보내셔서 책망하시고, 어린 아이를 보내셔서 부끄럽게 하시고, 친구를 보내셔서 위로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서로를 살리는 참 좋은 이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조차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직접 움직이십니다. 스스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십니다. 열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꺾으십니다. 홍해를 가르치고 히브리인들을 deliver하셨고, 홍해를 닫으셔서 애굽을 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는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음에 분명하게 서있기만... 하나님만을 굳건히 의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도우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악에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바다를 가르시고, 산을 옮기시고, 하늘에서 먹을 것을 내리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 위에 재물로 내놓으시는 분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내려놓고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품으로 옮기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4. 내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교회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라는 한 일본인입니다. 교회사를 좀 아시는 분들은 김교신이나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의 스승입니다. 우치무라 간조와 김교신은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소위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문헌과 활동을 점검해보면 그들이 악이 횡횡하던 제국주의시대에 마음을 다해 복음주의자로 살고자 했던 처절한 발버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1861년에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예수를 믿게 되었고, 1884년부터 필라델피아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경험했던 미국 교회는 그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줬습니다. 당시는 서양의 열강들이 보다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남미로 앞을 다투어서 세력을 넓히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탐욕스러운 식민지 정복의 과정에서 교회가 하고 있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군국주의로 무장하고 제국주의에 눈을 뜰 때, 서양 선교사 중심으로 조직된 일본 교회는 군국주의를 일본의 국가 정책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양의 문명과 기독교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본 교회 또한 서양의 문명과 함께 들어온 무분별한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가 제일고등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본 천황이 교육 칙서를 내립니다. 그 교육칙서에는 천황에 대한 충성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애국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천황의 교육칙서에 반대했고, 교사직을 박탈당합니다. 그의 이러한 신앙적 선택이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가 항상 읽던 성경 안표지에는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김교신 등은 “나는 조선을 위해, 조선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라는 표어로 ‘성서조선’이라는 신앙지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교회가 나찌 앞에 무릎을 꿇고 히틀러의 손을 들어줄 때 칼 바르트는 독일 교회가 영적 지성과 양심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일본 교회가 군국주의의 손을 들어줬을 때 우치무라 간조는 자신의 신앙 양심으로 군군주의에 반대합니다. 그는 조선에서 유학 온 제자들을 키워냈고,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와 교회와 민족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우는데 기여합니다.
제가 언젠가 한번 여러분께 소개해드린 주기도문에 대한 글이 하나 있습니다. SNS를 통해서 많이 알려진 글이긴 합니다만,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늘에 계신'이라 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라 하지 말라. 아들 딸로서 살지도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 하지 말라. 자기 이름만 빛내려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에 임하옵시고'라 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말라. 자기들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지 않느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만 찾아다니지 않느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도 않으면서.
저는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부분이 바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악에서 우리를 구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나는 내 인생의 구경꾼이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적 지성과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집단 무의식과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유명한 칼 바르트 뿐만 아니라 우치무라 간조가 우리에게 의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서 악을 구별할 줄 알았고, 그 악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악에서 구원하실까요? 바로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고 선한 의지를 주십니다. 깨끗한 양심과 맑은 영성을 주십니다. 그리고 악이 횡횡하는 시대에 신앙과 양심을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 교회와 성도를 구별하여 지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우리에게 이 기도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함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deliver 되어서 하나님의 품에 평안히 안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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