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13 우리들의 기도- 16.단 하나의 소원 | na kim | 2013-09-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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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2. ● 본 문 : 마 6:9-13 ● 제 목 : 우리들의 기도 – 16. 단 하나의 소원 대학을 다시던 시절 같은 학과에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진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차석으로 들어온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교단 출신에 참 진지하고 실력 있는 친구였습니다. 졸업한 이후에 연락이 되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부터 인터넷으로 대학 동기 모임에서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영어 학원 원장이 되어 있더군요. 여전히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묵상한 말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목회자 수준의 깊은 내용이라 제가 은혜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 친구가 지난 주에 마치 저를 보라는 듯이 한 이민 교회 목회자에 대한 이야기를 share 해서 자신의 코멘트와 함께 올려놨습니다. 멀리 있는 이민 교회 목사로 살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아틀란타에서 목회를 하던 한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갑자기 노래를 불렀습니다. 뜬금없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성도들이 당황했습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처음에는 목사님이 유머를 사용하시는 줄 알고 그냥 웃었습니다. 목사님이 2절도 불렀습니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지긋이 눈을 감은 목사님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성도들이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백꽃보다 더 빨갛게 멍들어버린 마음, 일일이 다 말 못하는 수많은 사연으로 살고 있는 이민 생활을 하는 그들 자신과 그들을 섬기는 목회자의 마음이 노래를 통해서 공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설교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우는 것으로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 이야기에 코멘트하기를 “삶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뿐! 잊지 말아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 친구가 이 글을 통해서 제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이 친구를 통해서 내게 이런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 한 주간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목회자들을 많이 배출합니다. 딱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동기들 중에서도 나중에 목회자가 되겠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에 저를 비롯한 몇 명은 목회자가 되었고, 몇 명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20여년 만에 만난 그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러워하는 것이야 너무 뻔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서부터 꿈꾸던 목회자가 되지 못했는데,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제가 목회자로 살고 있으니 부러워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제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지요. “목사 이응도! 어떤 이민 교회 목회자가 동백꽃보다 붉게 멍들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노래했더군. 그래... 그래서 내가 그 길을 못갔어.... 그 길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런데 응도, 나는 자네가 엄살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동백꽃보다 더 붉은 예수 그리스도 피로 물든 마음 잘 지켜 주기를 바래. 우리의 삶의 목적은 단 한가지 밖에 없잖아. 그 목적을 마음에 품고 주님 허락하신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 주기를 바래. 우리가 지켜볼게...” 친구가 써준 짧은 한 마디를 읽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시울도 젖어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주시는 권면과 격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마음이 분주해서 잊을 뻔 했던 것, 내게 허락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귀한 가치 – 내 삶과 가정과 교회에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주권과 영광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맑고 건강한 힘이 샘처럼 솟아납니다. 1.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이유 오늘 우리가 묵상할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구절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같은 내용으로 주기도문을 소개하고 있는 누가복음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을 기록했던 일부 사본에 이 내용이 들어있고, 일부 사본에는 이 내용이 없습니다. 물론 이 말씀이 주기도문 마지막에 기록될 수 있는 개연성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기도문의 마지막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광송을 넣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로 후대에 그 누군가가 마태복음을 옮겨 기록하는 과정에서 이 영광송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NIV 성경에는 아예 이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고, 대부분의 번역본에는 괄호 안에 이 말씀을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먼저 ‘대개’라는 말의 이미를 아시나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대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뭐 대개가 그렇지...”정도로 씁니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크게 보자면...” “요약해 보자면”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중국어 성경에서 온 것인데, 그들이 ‘대개’(大槪), 혹은 “대개‘(大蓋)로 번역한 것을 1930년대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원문의 의미가 "대체적으로" "대략적으로"의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호티(oti)’라는 헬라어 접속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한 KJV 성경을 보면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여기서 ‘대개’라는 말이 영어로 어떻게 번역되어 있습니까? 예, 접속사 ‘for’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헬라어 ‘호티’와 접속사 ‘for’는 모두 “왜냐하면...”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 전체에서 이 구절을 이해하면, “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가 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기 때문입니다.”로 번역될 수 있겠습니다. 2. 하나의 목적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와 삶의 중요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면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면 되고, 내 소원과 내 욕망이 성취되는 삶을 살면 되고, 나의 성공의 최고의 가치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종교의 기도의 제목을 보십시오. 그들의 모든 기도는 자신의 자아의 성취 혹은 소원의 성취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로 자신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사람으로 비롯된 모든 종교의 기도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기도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이고, 그 나라의 주권이 왕이신 하나님께 있고 모든 영광 또한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단 하나의 목적이 이 기도 가운데 바르게 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도를 통해 드러나는 인생이 목적은 성공과 성취, 만족과 행복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통해 깃발처럼 펄럭이는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이 바로 서고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왜 이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3. 삶의 현실 하지만 우리들이 사는 삶의 현실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설교의 서두에 소개한 친구가 보내 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재벌 기업에서 일하다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온 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미국 온 지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은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더 기뻤던 것은 한국의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하겠다는 연락까지 받은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하루에 3시간씩 잠을 자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부가 끌어안고 춤을 추며 오늘 하루는 실컷 잠 좀 자자면서 누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가장의 베개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습니다. 폐암 말기였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병을 악화시켰다고 했습니다. 3개월 후 그 가장은 학위와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떤 가장은 S대 음대를 졸업하고 동아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줄리아드까지 졸업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 여러 번 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탁소에서 일합니다. 늘 무대를 그리워하고 늘 가르치는 일을 소망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설교 시간에 동백 아가씨라는 노래를 불렀던 그 목사님도 66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고백하기를 “동백 아가씨의 가슴은 동백꽃처럼 예쁘게 멍들었지만, 내 가슴은 새까맣게 타버렸어요”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들의 삶이 우리와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과 우리는 참 비슷한 삶을 삽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로 기도해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참해도,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혹은 아무리 내가 세상에서 잘된다 해도 우리의 삶의 분명한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주권과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박사 학위를 따고 좋은 직장을 얻은 성도에게도,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을 잃고 낙심하고 있는 성도에게도, 질병과 싸우며 눈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성도에게도, 따로 가족을 잃고 아파하며 울부짖는 성도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인생의 목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에게 허락된 은혜요 복입니다. 삶의 현실이 어떠하든지 나는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는 거룩한 목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욕심으로 살고, 쾌락으로 살고, 교만하고, 원망하고, 낙심하고, 평생 다 이루지도 못할 소원들을 빌고 또 빌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의 목적, 하나님의 나라와 주권과 영광을 위해 삽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기도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성도 여러분1 저는 16회에 걸쳐서 주기도문을 여러분과 함께 묵상했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오래 말씀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습니다. 그동안 저 자신에게 많은 은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다시 마 6:9-13의 본문을 보실까요? 이 본문에서 기도를 뺀 서론과 결론을 추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3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다.” 13절 하반절이 가진 역할이 무엇인지 한눈에 보이십니까? 이렇게 기도해야 할 이유,우리의 소원이나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과 성취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와 삶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주권과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한 마디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한 마디 말은 ‘아멘’입니다. 아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뜻을 짧게 요약하면 ‘동의와 헌신’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동의라고 말한다면, 동의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기도한 대로 살아가는 것’은 헌신입니다. ‘아멘’이라는 고백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이 영광 중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와 시험과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내면 깊은 곳에서 동의하며 나도 기도한 대로 살겠다는 헌신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멘으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이 기도에 동의하고 헌신을 결단할 것입니다. 기도한 우리는 이 기도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기도한 대로 살고 헌신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아름다운 기도를 허락하신 주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단 하나의 목적을 기도를 통해 가르쳐주신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시련과 고통, 시험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단 하나의 목적으로 기도하며 헌신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기도문에 빚진 자로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이 기도가 우리의 삶을 통해 성취되는 은혜와 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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