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중심잡기-10.세상의 빛 | na kim | 2013-1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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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5. 본 문 : 마태복음 5장 14-16절 말씀 제 목 : 중심 잡기 – 9. 세상의 빛 헬렌 켈러를 아실 겁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쯤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녀가 쓴 책 가운데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집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 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책을 가겠습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 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보고 싶습니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순간이 되면,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는 이 소원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이후 단 한 번도 빛과 소리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간절하게 사모했던 사흘의 은혜는 그녀의 마음에 깊은 소원으로만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절망하고 후회하면서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 헬렌 켈러의 이웃, 두 사람 그녀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녀의 어머니였던 케이트 켈러는 헬렌 켈러가 6세가 되던 해 교육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누가 자신의 딸을 장애를 이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같은 시청각 장애인이었던 로라 브릿맨, 그에 대한 책을 썼던 찰스 딕슨, 이비인후과 정문의였던 줄리안 치솜, 청각 장애인을 돕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펄킨스 시각 장애인 학교, 그 학교의 교장이었던 마이클 아나가노스를 차례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이클 아나가노스는 케이트 켈러에게 당시 20세였던 그 학교 졸업생 앤 설리번에게 헬렌의 가정 교사가 되는 것을 물어보게 됩니다. 케이트 켈러는 자신의 딸에게 다가온 엄청난 불행이 딸의 삶을 control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에게 장애가 발견될 때, 많은 부모들이 중요한 실수를 합니다. 어린 자녀가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먼저 절망하고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인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딸을 위해 최선을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헬렌 켈러의 성공적인 삶은 그녀의 인생의 가장 좋은 이읏이자 친구였던 어머니의 헌신이 만든 열매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우리가 익히 들은 이름입니다. 앤 설리번입니다. 그녀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결핵을 앓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8살 되던 해 결핵으로 죽었고 동생도 같은 병으로 죽습니다. 어려서 부모의 따뜻한 양육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각종 질병에 감염되어 점점 시각을 잃게 됩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좋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몇 번의 수술을 했지만 시력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학교였던 펄킨스 시각 장애인 학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받은 마지막 수술에서 그녀는 시력을 회복합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녀는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바로 가정교사가 되어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후 그들은 49년을 함께 보냅니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요 이웃이요 동지가 됩니다. 켈렌 켈러는 설리번의 도움으로 읽고 쓰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시청각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대학을 졸업합니다. 하나님이 헬렌 켈러에게 허락하신 이 두 사람은 깊고 짙은 어둠 속에 있었던 그녀의 삶을 파고 들어온 햇살이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장애를 앓은 한 사람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인데, 이들이 비춰준 빛으로 헬렌 켈러의 삶은 아름답게 빛납니다. 우선 헬렌 켈러는 많은 집필 활동을 한 작가가 됩니다. 이웃과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가담하면서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세우자 그녀는 “인종차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말인가?”라고 논박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선거권과 참정권,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기도 합니다.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빈민들의 건강과 영양을 연구하고 도왔고,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를 설립하여 인권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장애인들과 도시 빈민들과 분쟁 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한 여성이 살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삶의 빛과 향기는 이 세상이 남아 있습니다. 2. 너희는 빛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교회에 대해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비추는 빛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빛이 가진 몇 가지 속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먼저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빛은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16절에 답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들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면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어릴 때 목회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받은 몇 가지 상처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이목사 아들’이라는 호칭이었습니다. 저를 보면 아버지가 보이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자인 저희 아버지가 ‘응도’라는 셋째 아들을 두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었을까요? 아주 곤란한 일이 되었을까요? 때로 아버지께서는 저로 인해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 오는 아이들과 싸우기도 했고,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사고를 치기도 했습니다. 항상 대표로 혼나고 대표로 물어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출발해서 수요일까지 3박 4일을 한다는 겁니다. 너무 당연히 저는 부모님께 묻기 전에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예수 믿기 때문에 주일에는 못갑니다.” 학교 선생님께서 집에 전화를 하셨고, 부모님과 의논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다는 것에 대해 너무 기뻐하시고 자랑하셨습니다. 제가 목사 아들답다는 거지요. 아버지는 정말 오랫동안 그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저놈은 어릴 적부터 목사가 될 싹수를 보인 놈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서 사람들이 우리들을 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세상이 우리를 보기만 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요? 여러분과 저를 보면, 초대교회를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될까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답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하는데, 성도를 보면 십자가가 보여야하는데 세상보다 더 어둡고 추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3. 빛의 삶, 착한 행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중에서 16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가 고민했던 두 문장 – 1)“교회와 성도가 세상에 빛을 비추라!” 2)“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문장이 있습니다. 16절을 다 함께 읽읍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입니다. 빠진 문장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교회의 무엇을 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일까요? 여기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입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떤 모습일 때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예,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선한 이웃의 삶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믿음이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이 삶으로 선하게 나타날 때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세상에는 빛이 되고 하나님께 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모여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나 개인은, 우리의 가정은, 우리 초대교회는 세상을 빛입니까? 세상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가운데 드러납니까? 자신 있습니까? 이 대답을 하기 위해 오늘 본문을 다시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착한 행실’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직분이 있고 봉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한 사람’입니까? ‘착한 행실’을 하며 삽니까?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만들어내는 착하고 의로운 삶이 있습니까? 우리를 빛이라 선언하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믿음이 만드는 우리들의 삶’에 주목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로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슴 깊이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가 원수되는 이 세상에서 선한 이웃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결과는 그들의 영광에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선한 삶은 그 결과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성도의 선한 삶의 동기가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고, 성도의 선한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있고, 성도의 선한 삶의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으로 하는 여러 일을 통해서 자기 만족과 자기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자 오류입니다. 성도의 헌신되고 선한 삶의 모든 동기와 목적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 맞춰져 있습니다. 성도의 선한 삶의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4. 서로에게 빛이 되는 삶 여러분은 2014년에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로 성장하면 좋겠습니까? 더 많이 모이면 좋습니까? 내가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면 좋습니까? 내가 필요한 것을 잘 채울 수만 있으면 됩니까? 재미있고 화목하고 즐거우면 좋습니까? 저는 제가 섬기는 이 교회에 대한 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2014년에 우리 교회가 헬렌 켈러와 그녀의 어머니 케이트 켈러, 시청각 장애인이었던 로라 브릿맨, 그에 대한 책을 썼던 찰스 딕슨, 이비인후과 정문의였던 줄리안 치솜, 청각 장애인을 돕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펄킨스 시각 장애인 학교, 그 학교의 교장이었던 마이클 아나가노스, 그리고 헬렌 켈러의 스승이었던 앤 설리번이 있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들과 또 그들이 만났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한 사람의 삶에 강도가 찾아왔습니다. 청각과 시각 장애라는 질병으로 19개월 된 어린 아이에게 찾아왔습니다. 어린 아이는 깊은 어둠 속에 쓰러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돕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켜집니다. 그 등불들이 함께 모여서 그녀의 삶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밝힙니다. 비로소 그 소녀의 인생에도 등불이 켜졌습니다. 그리고 그 등불은 세상을 향해 비춰집니다. 그 등불의 이름이 헬렌 켈러였습니다. 하지만 헬렌 켈러라는 등불에는 그녀의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모든 이름들이 함께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헬렌 켈러와 함께 마음의 빛을 나누고 사랑의 등불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빛이 되는 삶을 살았고, 함께 세상의 어둠과 불행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불행이 찾아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때로 내가 잘못 판단하고 결정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그 모든 선택의 결과가 오늘 나를 어둡고 깊은 골짜기로 밀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깊고 어두운 절망이 늘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이 필요합니다. 빛 되신 주님,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가 필요합니다. 구원의 빛나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길에 빛이 되었던 것처럼, 말씀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서로에게 빛이 되고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삶에 드리운 검은 절망의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는 강력한 복음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2014년의 초대교회는, 그래서 서로에게 빛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의 삶에 등불 비추는 사랑의 교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연약함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함이 수치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히려 그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에 우리 안에 허락하신 작은 등불이 역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와 지역 사회를 비추는 복음의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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