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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전교인 가족 수련회-용사가 되는 길 na kim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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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5. 가족 수련회

 

본 문 : 6:12

제 목 : 용사가 되는 길

 

저는 격투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격투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격투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의미 없는 싸움은 동의하지 않지만, 규칙과 혜택을 정해 놓고 벌이는 격투기는 대리만족과 더불어서 치열한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발과 다리의 근육이 움직이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온 몸으로 들립니다.

 

지난 해 한국에서는 주먹이 운다라는 아마추어 격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컨셉은 단순합니다. 전국에서 싸움 좀 한다는 사람들을 모은 것입니다. 먼저 지역별로 예비 심사를 했습니다. 왜 참가하게 되었는지 사연도 들어보고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도 보는 시간입니다. 조폭 출신이 있는가하면, 청와대 경호원도 있고, 고등학교 싸움짱이 있는가 하면, 프로로 대뷰하지만 않았을 뿐 오랫 동안 종합 격투기를 연마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프로 선수들과의 짧은 스파링을 통해서 합격과 탈락을 결정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각 지역에서 선별된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 선수들이 싸우는 케이지에서 토나먼트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예비 심사에서부터 저의 흥미를 끌었던 참가자가 셋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30대 초반의 기업체 사장이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이미 성공했습니다. 왜 이런 경기에 참여하려고 하는지 물었더니 격렬한 경기를 통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즐긴다고 했습니다. 마치 아수가 된 느낌으로 케이지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격투기를 깡다구하나로 버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0대 후반으로 상대방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어서 사생결단을 하듯 싸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수없이 맞으면서도 끝까지 달려들어서 상대방 선수를 KO시키곤 했습니다. 왜 격투기에 나섰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이 오직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사람인데, 세상에 대한 모든 울분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주목을 끈 사람은 3’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혼혈아 왕따로 불렸습니다. 어머니가 동남아시아에서 결혼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혼혈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늘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수없이 놀림을 아하고 맞고 지내다보니 학교를 여러 번 옮기기도 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싸움조차 해본 적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누군가가 격투기를 배우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격투기를 배운지 1년 남짓, 마침 아마추어 대회가 열린다기에 참가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연이 독특했던 이 세 사람이 4강까지 올랐습니다. 4강에서 사장과 깡다구가 붙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사장은 덩치도 훨씬 크고 기술도 좋았습니다. 깡다구는 1회전에서 거의 KO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2회전이 되었습니다. 깡다구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장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3회전이 되었습니다. 깡다구는 죽자사자 달려듭니다. 결국 승리는 깡다구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사장이 말합니다. “이제 다시 취미로 운동할거예요.”

 

결승전이 되었습니다. 깡다구의 결승전 상대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혼혈아 왕따였습니다. 사실 모두가 그동안 혼혈아 왕따의 활약에 놀랐습니다. 결승에 올라올 때까지 아주 조용했지만 단단한 실력으로 조폭, 경호원, 야쿠자 출신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상대를 제압했습니다. 과연 거칠고 입담 좋은 깡다구와 혼혈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고3 학생, 누가 이겼을까요?

 

결승전을 마치면서 해설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선수가 역시 이기는군요. 놀랍습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누가 싸워야 할 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1. 용사를 부르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과연 그는 용사입니까? 이스라엘은 미디안 족속에게 7년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누구도 미디안에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사자가 용사라고 부르는 기드온은 농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추수한 밀을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몰래 포도주를 짜는 틀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뜬금없이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를 큰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용사라고 부르면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그 의미를 압니다. 사사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그 누구라도 부르시면 그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는 받은 사명대로 하나님과 나라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을 봅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

 

그런데 기드온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쁨으로 응답합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6:13)

 

여러분!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하나님이 세우신 용사가 맞을까요? 왜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주저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그를 용사라고 부르시고 그를 용사로 세우실까요?

 

2.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크고 놀라운 승리를 거둡니다. 300명의 군사로 135,000명이나 되는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어떻게 이런 승리가 가능했을까요?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각 지파의 군사를 모읍니다. 32,000이 군사가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숫자가 너무 많다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혹시 자원하지 않거나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남은 만명의 군사는 정말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각오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그 수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냇물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과 손에 물을 떠서 핥는 사람을 구별했습니다. 손에 물을 떠서 핥아 마시는 300을 택하셨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적은 수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32000이 아닌, 10000이 아닌 300을 원하셨습니까?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7:2)

 

하나님이 이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들의 힘이 그들을 지키지 못합니다. 왕이 아니라, 사사가 아니라, 군대가 아니라, 무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300으로 135000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135000으로도 300에게 패배하는 것입니다.

 

3. 표징을 보이소서!

 

다시 이 질문에 대답해보시겠습니까? 기드온은 용사입니까? , 그렇습니다. 역사가 기드온의 용사됨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 어떻게 이렇게 겁 많고 하나님에 대해 낙심했던 그가 용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실 때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용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다시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

 

용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힘으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 힘으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성도와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그의 힘도, 지식도, 능력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는 것을 기드온을 향한 부르심에서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기드온이 용사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사로 세웠으되 아직 그는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힘과 능력을 주셨지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용사로 변화되어 갔을까요? 6:16-17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6:16-17)

 

그를 용사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 앞에서 기드온은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두 번씩이나 과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지, 능력을 보여주실 것인지를 시험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친절히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확신하는 순간 그는 용사가 됩니다. 용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용기를 내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대표하는 사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에 맡기신 아름다운 사명을 넉넉하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용사가 되다.

 

성도 여러분!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용기를 낼 때 참되고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만용이 아니라, 깡다구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사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싸우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믿을 때 참된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기드온에 대한 기사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가 숫자에 대해 담대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숫자에 대해 너무 연약합니다. 사사기 7장에서는 하나님이 숫자를 통해 기드온을 시험하십니다.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 앞에 32000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려보내라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10,000명을 또 돌려보내라 명령하십니다. 눈 앞에는 135,000의 적군이 진을 치고 있는데 하나님은 300을 남기겠다 말씀하십니다. 오직 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사가 된 기드온은 숫자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담대하게 믿음을, 용기를,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는 300으로 135000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숫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용기가 기드온과 300명을 용사로 만들었고, 승리하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내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싸우는 싸움에는 용기도, 지혜도, 용사됨도 필요 없습니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큰 적군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내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 것으로 안되기 때문에, 나는 135,000 앞에 서 있는 300 밖에는 안되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나의 것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무장했을 때 비로소 나는 세상을 이기는 참된 용기로 무장한 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승리를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깡다구와 혼혈아 왕따 중에 누가 이겼을까요? 그들의 결승전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치고 받았습니다. 결과는 무승부였습니다. 연장 31회전을 더 하기로 했습니다. 혼혈아 왕따가 돌진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깡다구의 깡다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혼혈아 왕따 고3 학생이 전국에서 몰려든 싸움꾼들을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해설자가 말합니다. “싸워야 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용기를 낸 어린 선수가 결국 승리했다!”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그렇다면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비록 300에 불과하지만 135000의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나의 환경을 이길 수 있고, 나의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이길 수 있고, 나의 옛사람을 이길 수 있고, 두려움과 낙심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 있는 여러분!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시대에 큰 용사로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할 분명한 이유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과 더불어 용사의 길,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셔서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의 찬송을 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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