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1. 빌레몬의 편지- 2. 오네시모, 빌레몬의 복음 | na kim | 2014-06-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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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 본 문 : 빌레몬서 1장 17-21절 말씀 제 목 : 빌레몬의 편지 – 2. 오네시모, 빌레몬의 복음 제가 가끔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는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명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이 복음입니까? 우리는 ‘예수 구원’의 복음을 이미 받았으므로 더 이상의 복음은 없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26장 19-20절에는 사도 바울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줍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 26:19-20)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로 호송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 중에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헤롯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후에 바울에게 임한 복음의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회개’입니다. 둘째는 ‘회개에 합당한 삶’입니다. 그는 이 복음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했고, 이방에 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이라면, 복음 앞에 이미 회심한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말씀들입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믿지 않는 세상에 증거했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심령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성도와 교회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에베소서 4:1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라고 권면합니다. 또 빌립보서 1:27에서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권면합니다. 성도와 교회들에게 전하는 바울의 복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복음이 여러분과 제게 임했습니까? 우리는 예수 믿는 성도와 교회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에 대해 권면하는 것처럼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의 말과 행동과 가치관과 삶의 목적은 복음에 합당합니까? 복음에 합당한 삶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보여주는 변화는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합니다. 복음 앞에 엎드립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는 것을 확증하며 말씀하십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자신의 삶에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그의 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는 그 복음에 합당한 삶, 즉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던 재물로부터 자유를 선언합니다. 식민지 유대땅에서 로마의 세금 맡은 관원으로서의 삶의 유익을 내려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해를 끼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헌신합니다.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의 관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삭개오와 비슷한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복음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대상이었고, 이제 복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할 두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버려야 할 것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엡 4:22)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학자였고, 로마의 시민이었습니다. 이미 학문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많은 성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모든 것은 ‘배설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는 것”(엡 4:21-22)입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자기가 받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일까요? 바울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분노 가운데 있던 성도와 교회에 찾아가서 엎드려 사죄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적대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 그들과의 관계의 회복은 바울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첫 번째 스텝과도 같습니다. 믿지 않는 사울에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믿는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은 바로 ‘예루살렘 교회의 상처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갔고, 그들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빌레몬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간곡한 부탁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한 긍휼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 1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몬 1:1-2) 2절 하반절에 보시면 골로새에 있는 교회를 섬기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되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사도 바울과 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된 골로새 교회는 그 지역의 유력한 귀족이었던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주 ‘~~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당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따로 구별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성도의 집을 예배의 처소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빌레몬이 적어도 자신의 집을 예배의 처소로 제공할 정도의 신앙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복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인 골로새 교회는 아마도 빌레몬의 영향력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비록 목회자는 아니지만 그의 삶의 모습은 교회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는 빌레몬의 신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치 교회가 목회자나 영향력이 있는 당회원의 신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향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빌레몬서가 단순히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3. 오네시모, 빌레몬을 향한 복음
자, 그렇다면 지금 빌레몬이 당면한 복음은, 빌레몬이 해결해야 할 복음에 합당한 삶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설교의 서두에서 사도 바울이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복음에 합당한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도망친 노예,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여 돌아가고 있는 오네시모의 마음도 우리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빌레몬이 당면한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바울도, 오네시모도, 빌레몬도, 그리고 이 편지를 회람하는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빌레몬이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믿음을 가진 좋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둘째, 오네시모가 잘못을 범하고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셋째,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를 죽기까지 벌할 수 있는 보장된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빌레몬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이미 그는 좋은 성도입니다. 그의 집에 있는 교회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좋은 소식들이 오고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빌레몬과 그의 교회가 넘어서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질서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갈등할 때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노예가 상식화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도망친 노예를 벌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빌레몬은 구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의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네시모, 도망친 노예이면서 자신이 죽기까지 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빌레몬서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관문입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통과해야 합니다. 빌레몬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위한 복음은 사도 바울이 전했겠지만, 그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순종해야 할 복음은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마치 바울 대하듯, 마치 형제와 자매를 대하듯 할 것을 부탁합니다. 로마의 법과 그시대의 상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과 질서에 순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에게 범죄한 오네시모는 오히려 빌레몬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이 되어 그에게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4. 복음에 합당한가! 저희 동기 목사님들 중에 대전에서 목회를 하시는 홍성철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이런 좋은 글을 썼습니다. “한국 교회는 로마서에서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을 가르쳤지만, 복음의 원조인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집중해서 가르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행동과 신앙이 분리되는 기형적인 성도들을 양산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신학과 ‘믿음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복음서의 가르침이 함께 강조되지 않는다면 그릇된 신앙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자신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저는 홍목사님의 글에 동의합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믿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하는 교회와 성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텐데 무엇으로 세상을 비출 것인지, 무엇으로 세상에 맛을 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텐데,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지 않았고, 고민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으면 되지 뭐.... 라는 잘못된 논리만 키워왔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가르치셨지만, 곳곳에서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계속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에게는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관문이었습니다. 그는 교회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가난한 이웃들과 자신이 불법으로 토색한 사람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빌립보 교회 또한 각각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교회와 빌레몬이 복음에 합당한 성도로 살기위해 넘어야 할 관문은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오네시모, 빌레몬에게 죄를 범하고 도망친 노예입니다. 빌레몬은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로 다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네시모를 통과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와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오네시모는 예수 믿는 빌레몬과 교회에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복음이 있습니까?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복음에 합당한 성도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삭개오에게는 자신이 토색한 사람들을,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이 핍박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빌레몬에게는 자신에게 범죄한 오네시모를 통해서 복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 여러분의 복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통해서, 무엇을 통해서, 어떤 일을 통해서 복음에 합당한 삶의 관문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오늘은 서로 이렇게 인사해 봅시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복음입니다. 당신을 통해 복음에 합당한 삶을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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