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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2 빌레몬의 편지 na kim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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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22.

 

본 문 : 빌레몬서 1

제 목 : 빌레몬의 편지 5. 빌레몬의 편지

 

1998년 경북 안동시가 택지를 개발하면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꽤 보관 상태가 좋은 무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400년이나 된 무덤이었습니다. 고성 이씨 이응태(1556~1586)는 젊은 나이에 병석에 눕게 되었고, 아내와 배속에 자녀를 두고 세상을 이별하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회복을 기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서 신발을 만들었지만 남편은 그 신을 신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슬픈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이 아버지에게라는 편지를 써서 관에 함께 넣었습니다. 놀랍게도 400년이 지난 당시에도 편지와 부장품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한국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읽어보신 분들이 있을텐데, 400년 전의 애틋한 사연을 잠시 함께 보실까요?

원이 아버지에게 /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네 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나하고 자식하고 누굴 의지하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던고

늘 자네더러 내 이르길 한테 누워서 이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하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고 자네더러 일렀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고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내 살 힘 없으니 쉬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 내 속은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워하여 살까 하노이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찬찬히 와 이르소

내 꿈에서 편지 보시고 한 말 세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 넣네 찬찬히 보시고 날더러 이르소

자네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할 말 이르고 그리 가시면

밴 자식 태어나면 누구를 아비하라 하시는고

아무리 한들 내 속 같을까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자네는 한갓 그리 가 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리 한들 내 속 같이 서러울까

그지그지 끝이 없어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편지 세세히 보시고 내 꿈에 세세히 와 보고 세세히 이르소

나는 꿈에 자네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꼭 보소서 하! 그지그지 없이 이만 적노이다

 

어떻습니까? 400년 전 한 젊은 여인의 남편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느껴지십니까? 남편을 먼저 보내고 뱃속에 있는 자녀와 험한 세상을 살아갈 일에 대한 두려움, 걱정, 그리고 깊은 절망도 느껴지십니까? 그리고 여러분! 여러분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 외에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 편지에서 다양한 역사적인 정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한 것이 14469월입니다. 그리고 한 여인이 남편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를 쓴 것이 1586년입니다. 140년이 지났습니다. 백성들이 한글을 사용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한글이 이미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문화와 사랑의 표현 방법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이 병상에서 일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끊어서 신을 엮었습니다. 그리고 먼 저승길을 떠나는 남편의 관속에 그렇게 엮은 신을 넣어줍니다. 우리는 조선 시대 남녀가 유별하고 엄격한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여성들의 남편에 대한 감정표현이 무시당할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보시면 먼저 그들은 정말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하소자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서민들이 남녀간 평등한 관계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400년 전의 편지를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아마도 전문가들이 이 편지를 연구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난 4주간 우리는 400년 전의 편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놀라운 사연과 메시지가 담겨 있는 편지 하나를 묵상했습니다. 그 편지의 이름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2000년 전 로마의 옥중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골로새 지역의 귀족이었던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1, 25절로 된 이 짧은 편지 안에는 바울 한 사람이 빌레몬 한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빌레몬에게, 골로새교회를 통해서 1세기 모든 교회들에게, 1세기 모든 교회들을 통해서 2000년 역사의 모든 교회들에게, 그리고 20146월 우리 초대교회 성도들에게까지 전하고자 하는 하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4주간 우리는 세 사람, 바울과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입장에서 이 편지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이 편지가 주는 의미와 교훈을 개괄해보려고 합니다. 이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정보들은 무엇일까요?

 

1. 복음, 결국 사람입니다.

 

빌레몬서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사람이 복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복음이 되는 관계,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람이 복음이요, 교회가 복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로마라고 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의 믿음의 선택에 주목하십니다. 세상은 거대하고 나 한 사람의 선택이 세상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의 선택은 곧 복음의 선택이요 교회의 선택이며 하나님 나라의 선택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종말론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나를 통해, 나와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 - 거룩하고 아름답기를 소망합니다. 매력적인 나라로 세상 가운데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 그리고 바울을 통해 나타난 복음, 그 복음을 통해 비춰진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를 감동시켰습니다. 귀족들은 복음 앞에서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노예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왔고, 노예들은 적개심과 분노를 버리고 감사하면서 한 형제로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어 서로를 섬기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합니다.

 

2. 선교, 세상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이 편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선교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빌레몬서 설교를 시작할 때 화두를 하나 던졌습니다.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에 대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먼 곳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빌레몬서는 로마보다 먼저 복음을 들었고 먼저 교회가 서있는 골로새 지역을 향해, 이미 복음을 받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빌레몬을 향해 기록된 편지입니다. 우리는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서로에 대해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이 편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선교에 대한 다른 생각 하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복음이 없는 곳에 복음의 씨를 심는 일에 계속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또 있습니다. 복음을 이미 받았으되 비복음적인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들의 가치관과 성품과 생각과 삶을 조금도 변화사키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딤후 3:5)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의 흔적은 있지만 복음적인 삶은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는 복음이 이미 들어와 있지만 비복음적인 문화와 삶이 통용되고 있는 곳을 향해 전략적으로 기획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없는 곳에서는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들어가 있지만 비복음적인 문화와 삶이 있는 곳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우리가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내가 삶으로 비복음적인 문화와 삶에 대해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노예제도라는 비복음적인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빌레몬이라는 신앙인을 향해 오네시모라는 복음을 편지로 보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이 함께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 관계 속에 임재합니다.

 

세 번째 빌레몬서를 통해서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보물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저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정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기쁨과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있습니까? 빌레몬과 오네시모에게 이것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두 사람은 각각 신실한 성도였기 때문에 여러 삶과 신앙의 부분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빌레몬만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빌레몬 또한 오네시모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정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작년에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 한분과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분이 제게 크게 실수를 하신 것 같은데, 자꾸만 변명을 하고 저를 오히려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도 불편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분이 저에 대한 실수했다는 것이고, 또 그분이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괜찮은 분인데... 왜 그랬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대하자....’ 실수는 내가 받기로 하고, 인정하지 못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연약함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랬더니 제 마음이 편해지고, 그분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리고 저희 둘을 대하는 다른 목사님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친근하게 지내난 목사님들 사이에 기쁨과 평안이 회복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을 권면합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1:20) 어떻게 말입니까? , 빌레몬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 됩니다. 복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오네시모를 용납하고 용서하면 됩니다. 관계를 회복하면 됩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회복된 관계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영적 정서인 기쁨과 평안이 꽃피게 됩니다. 다시 한번 1:20을 읽읍시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1:20)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과 평안을 회복해야 할 영적 의무가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4. 교회, 우리는 서로 필요합니다.

 

마지막 하나, 우리가 이 편지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교회의 원리가 있습니다. 지금 빌레몬서는 등장하는 각각의 사람들이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역할만으로는 교회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중보자의 역할을 하기위해 희생하려 한들 오네시모가 목숨 건 순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빌레몬이 자신의 모든 이익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빌레몬이 사도 바울의 도움없이 오네시모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오네시모가 바울의 양육 없이 영적 성장이 가능했을까요? 그가 빌레몬의 용납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내가 성도로서, 지체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체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자기 희생과 헌신이 빌레몬과 오네시모 두 사람을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역할은 골로새 교회를 변화시키고 로마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빌레몬은 비복음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복음적인 삶을 수용하고 살아가던 한 성도가 어떻게 자신에게 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 교회가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이 되어 빌레몬에게 돌아가는 오네시모 또한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네시모의 죽음을 각오한 순종의 결단은 앞으로 초대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영적 자세와 각오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감당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모든 헌신된 성도들의 역할들을 모아서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합니다. 그들 모두는 서로의 역할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빌레몬서를 통해서 보여주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역동적인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모두에게는 복음이 허락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각자의 삶의 상황과 관계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십니다. 나와 가정과 교회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결단, 어떤 순종을 해야 할까요? 빌레몬서는 우리들의 좋은 안내서입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서로에게 복음이 되어 서로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들 모두는 각각 다른 역할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에게 역사하셔서 교회로 하나 되게 하시고, 성도로 성장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2000년 전 빌레몬의 편지를 준비하시고 오늘 우리들에게 이 편지를 읽게 하셨습니다. 이 편지의 권면에 순종하고 헌신할 때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이 넘치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기쁨과 평안의 공동체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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