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7.사람들을 위한 기도 | na kim | 2015-01-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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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야고보서 5장 13-16절 말씀 제 목 : 기도 – 7. 사람들을 위한 기도 언젠가 제가 한번 소개한, 사랑의 교회 건축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 목사님 기억이 나십니까? 뭐 기억 못하셔도 됩니다. 그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대해서 인터넷에 꽤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는 분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을 만난 후 소감을 SNS에 올렸습니다. 그 대형교회 목사님은 아직 젊고 의식도 있는 편입니다. 이미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초대형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선언하시고, 다른 교회에서 옮겨오는 수평이동은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여러 개로 나누려고 하는데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려고 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들 중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몇 분 안되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 목사님이 저의 친구 목사님과의 대화 끝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젊은 목사님들이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성도들, 그리고 기독교 언론들이 대형교회의 목회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마치 적을 대하듯이 한다는 겁니다. 본인은 역사의식도 있고 목회자로서의 양심도 있어서 건강하고 바른 목회를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대형교회를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받고 마치 적군인 듯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야지 자신의 형이 답답하다고 해서 엘리압과 먼저 싸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자신은 아군이지 적군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말씀에 많이 수긍이 갔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좋은 조건으로 크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목회 윤리나 양심을 어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힘을 쏟고 있기도 합니다. 별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 목사님은 좀 다른 논리로 반박했습니다. 이미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되었고, 성도들이 그 교회가 주는 이익과 편리함에 물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분립개척을 하려고 해도 성도들이 그 교회를 떠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평이동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대부분의 성도들이 수평이동을 통해서 그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교회 성도가 되기 위해서 아예 이사를 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식이 존재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또 존재는 의식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칩니다. 이미 부자가 되어 버린 그 교회가 가난한 이웃의 삶에 가슴 깊은 공감과 참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주장도 옳습니다.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와 이미 대형교회가 되어버린 목회자는 서로를 비판하면서 매서운 비난의 칼날을 세워야 할까요? 대형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의 목회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교회악’인 것처럼 손가락질 받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왜 모기에게 분노하는가?
제가 대학 다닐 때 썼던 시 중에서 모기에 대해 쓴 좀 유치한 시가 있습니다. 여름에 캠핑을 갔다가 모기 때문에 잠을 못자고 느낀 점을 썼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문장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여름, 그렇지 않아도 덥고 짜증나는 밤인데 모기가 왱왱거립니다.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나서 불을 켜고 모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허공에 분노의 팔을 휘두르며 모기를 잡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기는 모기일 뿐이고, 나는 나인데... 내가 화를 낼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 다른 사람의 눈물과 땀을 빼앗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세상에 부조리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런 일에는 침묵하거나 굴종하면서 피 빠는 일이 본능인 한 낫 작은 모기에게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가...? 뭐 이런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때가 없습니까? 자녀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또는 가까운 사람에게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쏟아내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없습니까? 차라리 남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들,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나의 가까운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쏟아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없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대단히 악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감당하지 못할 해를 끼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뿐입니다. 내가 가진 원칙과 현재의 상황이 잘 맞지 않을 뿐입니다. 조금 기다리거나 용납하면 될텐데, 서로를 인정하거나 참으면 될 일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정죄와 판단 속에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정작 분노해야 할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피하면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적의 위치, 혹은 적보다 더 먼 위치에 놓고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지 않습나까? 2.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이 가장 자주 흔하게 발생하는 곳에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뷴! 동의하십니까? 교회를 정의하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이기도 하고, 함께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서로 형제 자매된 관계이기도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부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는 아픔과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 상처와 함께 기억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함께 연결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관계가 바로 교회인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감사하거나 격려하는 일에 쉽게 실패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원칙이나 기대가 거절될 때, 이익이 충돌하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서로에 대해 분노하고 정죄하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할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성도와 교회는 분노와 비난이 아닌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단호한 음성으로 권면하십니다. “서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를 위한 기도,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람들의 삶은 다양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있느냐?”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느냐?” “너희 중에 육신이 병든 사람이 있느냐?” “너희 중에 영적으로 병들어서 범죄하는 사람이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들은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에도 늘 발생하는 모든 일들입니다. 그 모든 일 앞에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이 무엇인지 야고보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3. 기도하기 위하여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치고 말이지요... 교회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이나 그 대형교회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가정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있을까요? 우리들은 모두 우리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오늘 우리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우리 주님의 명령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성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도의 기도의 대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 내가 가장 기도하기 힘든 사람들을 성경에서 지칭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예, 원수입니다. 혹시 여러분! 원수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원수같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성경이 말하는 원수란.... 예, 진심으로 위해서 기도하기 어렵고, 사랑하기 어렵고,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고, 내 마음의 에너지를 다 빼앗아가는 그런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을 지칭해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문맥을 잘 보십시오. 여기서 ‘원수’와 ‘박해하는 사람들’은 같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과 ‘기도’ 또한 다른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풀어서 다시 쓰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원수나 박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다시 여러분, 우리는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르게 표현합니다.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위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희생하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손해보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때로 눈물과 아픔을 인내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우리는 사랑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가장 가까이 나와 함께 성도된 형제 자매들을, 내 가족을, 내 이웃을, 가장 멀리 나의 원수까지도 내가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헌신하고 수고하여 섬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희생과 섬김이 없는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는 기도가 없습니다. 4. 사랑하며 선대하며 축복하며 기도하라. 지금 우리는 함께 말씀을 읽으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이 두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너희 듣는 자’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은 “사랑하며 선대하며 축복하며 기도하라!”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원수입니다. 미워하는 자입니다. 저주하는 자입니다. 모욕하는 자입니다. 할 수 있을까요? 해야 합니다. 명령입니다. 이 다음의 말씀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29-31) 역시 이 말씀도 요약해볼까요? “기꺼이 뺨을 맞고 옷을 내어주고 구하는 것을 주고 빼앗긴 것을 다시 달라하지 않고 남을 대접하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에는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2-36)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요약해 볼까요? 그것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된 성도와 교회의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범죄하고 타락하고 그 아들까지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고 악한 인류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며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를 자녀된 성도와 교회가 닮았기 때문에, 닮아야 하기 때문에,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하신 것처럼 수고하고 헌신하며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읽어 봅시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보이십니까? “사랑하며 선대하며 축복하며 기도하라!” 이 네 가지 명령은 실은 한 가지 명령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내 마음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사람들, 나의 원수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요, 나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을 향한 거룩한 마음의 표현들입니다. 사랑하라를 네 번 반복한 말이기도 하고, 선대하라는 말의 반복이기도 하고, 축복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기도하는 사람은 서로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사람입니다. 비판의 잣대와 분노의 마음이 아닌 자비와 이해로 서로를 만나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서로를 향해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마음을 품습니다. 그 마음으로 수고하고 헌신하고 그리고 기도합니다. 우리 2015년의 첫 주일예배를 드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 앞에서 다짐하도록 합시다. “2015년에는 사랑하며 선대하며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서로를 위해 늘 기도와 헌신이 있는 참 좋은 성도와 교회, 초대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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