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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편지 김나래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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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무실 책상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서류들과 필요 없는 물품들이 한 가득 나왔습니다.  그 중에 작은 봉투에 접혀 있는 손 편지 하나가 있습니다.  3장으로 된 손편지.... 2003년 8월, 어머님이 제게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익숙한 필체로 기록된 편지입니다.  많이 읽어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래되었는데 정리하지 못해서 늘 그 자리에 두었었습니다.  다시 편지를 읽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해 5월에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여행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들어오기 얼마 전에 당시 창원에 살던 여동생 집에서 형제들의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미국으로 들어가면 또 한동안 못만나게 되니까요....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좀 못났습니다.  지금은 소천하신 아버님께 제가 좀 불효한 말들을 하고 언성을 꽤 높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때 아버님의 마음을 좀 이해했으면 좋았겠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잘 용납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가족들 앞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정도 지나서 미국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마음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저와 아버지의 갈등이 어머니로 인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아들도 왔겠다... 오랜만에 자녀들의 가족들이 다 모였겠다....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계속 먹을 것도 장만하고 게임도 하고 하하호호... 즐거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부르셨습니다. 

 

“여보, 이제 집에 가자!  내일 새벽기도 해야 된다!”

 

아버지는 목회자이시고,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미 밤이 늦었고, 창원에서 부산까지 가야하니 이제 집으로 가자는 말씀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도 미국으로 곧 가고, 이렇게 다들 모였는데.... 내일 새벽기도는 좀 빠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습니다.  목사 사모가 자녀들하고 놀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안가려고 하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오지랖이 넓은 제가 주섬주섬 일어서시는 어머니는 붙들어 앉혔습니다.  아버지께 오늘만 좀 혼자 가시든지, 새벽기도를 다른 분에게 맡기시든지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저와 아버지 사이에 격한 언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분 다 못가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날 아버지께 사과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과 언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사과와 화해 없이 미국으로 들어온 것이지요.  

 

어머니는 그 편지에서 제가 그날 한 행동이 어머니를 위한 행동일거라고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머니를 가장 아프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사과하지 않고 화해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서 그 이후에 잠을 주무시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아들된 도리로 아버지께 먼저 연락을 하고 사죄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구구절절 옳을 말씀이었지만 저는 그 편지를 받고서도 한동안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어머니의 주선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작게 웅얼거리면서 드린 것 같습니다.

 

1. 고린도 교회의 문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고린도전후서 하면 생각나는 사랑장이 있고, 은사장이 있고... 종말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편지에 기록된, 말씀이 좋고 은혜가 되는 것과 별개로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한 신학자는 고린도교회를 ‘교회 문제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좋은 은사를 받은 교회였기에 각자의 은사와 생각이 중요했고, 자랑했고, 분열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을 사도성을 부정하고 배척했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에는 원래 우상이 많았고, 우상숭배의 흔적들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습니다.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우상의 가치와 생활습관이 함께 들어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근친상간이나 동성애나 성적, 도덕적 타락이 교회 안에 만연했습니다.  그 결과 결혼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성도들 간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서 세상의 법정에 서로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교회 문제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불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바울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바울이 받은 은사 정도는 그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로 분열했습니다.  성장했던 교회는 중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2. 편지를 쓰다.

 

저는 사도 바울의 편지 하면 가장 먼저 빌레몬서를 떠올립니다.  ‘빌레몬서’라는 편지가 전달되는 과정이 복음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빌레몬서는 노예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잘못을 범하고 로마로 도주합니다.  그곳에서 숨어 지내는 중에 바울을 알게 되었고, 신앙이 성장했고, 바울의 아들이라고 인정받을 정도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바울은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도망친 노예가 주인에게 스스로 돌아간다구요?  그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바울이 그를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게 합니다.  다만 그의 손에 편지 하나를 들려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큰 결단을 요구합니다.  빌레몬이 사는 세상의 상식을 뒤집는 복음적 선택을 촉구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범죄자 바울을 받으신 것처럼, 바울이 오네시모를 받은 것처럼, 바울이 빌레몬을 받은 것처럼.... 빌레몬 또한 모든 차이와 잘잘못과 사회적 관념과 제도를 넘어서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 귀족 빌레몬과 노예 오네시모의 차이는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큰 차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 안에 있는 복음의 능력으로 그 차이를 넘어설 것을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두려움으로 살던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 바울이라는 복음을 만났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변화되었고, 이제 자신이 복음이 되어 빌레몬에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이 받아야 할 복음이며, 하나님이 빌레몬에게 보내시는 편지입니다.  오네시모의 손에 있는 글로 쓴 편지는 바울이 썼지만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빌레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오네시모라는 편지는 예수님께서 쓰셨습니다.         

3. 그들도 편지입니다.

 

우리는 빌레몬서를 통해서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배척했고 수많은 문제를 종합세트로 가지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거듭 ‘편지’에 대해 말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우리의 편지’라고 말하고, 3절에서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변화된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향한 편지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박람회인 고린도 교회가 과연 사도 바울의 편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일 수 있을까요?

 

저의 어머니의 편지에는 제가 잊지 못하는, 제 인생의 가장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은 그 때 그 일 이후에 저는 아버지는 한 번도 직접 뵙지 못했습니다. 전화로는 웅얼거리는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실은 직접 뵙고 엎드려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인데.... 여러 사정으로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보낸 편지에는 목회자 가정으로서의 우리 가정의 어두운 장면도 기록되었고, 목사로 사는 아들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버리거나 태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 편지가 저의 삶의 진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으며, 제가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저의 부족함이 여전히 제 삶에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고, 읽고 또 읽으면서.... 저의 부족함과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후서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신 편지인 이유,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이며, 바울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4. 편지가 됩시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졌고, 신의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며, 신이 스스로 편지의 배달부가 되었고, 배달부가 스스로 메시지가 된 편지입니다.  그 편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곧 이 편지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이 편지가 사람의 역사에 나타난 지 2000년 되었습니다.   인류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하나님이 먼저 쓰기 시작하신 편지입니다.  회복의 편지이며 평강의 편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편지 자체이며, delivery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 편지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입니다.  이 편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에 예수라는 편지가 이 땅에 전달된 목적이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선교팀이 고린도 교회에 쓰신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적대해도 하나님의 편지로서의 자존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먼저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선교팀의 편지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후 3:2)  바울의 흔적이 이 교회에 있고,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에 그들이 있고, 세상이 그들을 통해서 바울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지금 다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3절에서 다시 한편 편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교회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라는 편지에는 여러 아픈 기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분쟁했고 범죄했고 편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현재 고린도교회라는 하나님의 편지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기록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신 인도하심이며, 그 편지의 기록의 목적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되고 성도와 교회의 마음판에 기록된 ‘고린도 교회라는 편지’의 기록의 목적은 세상이 이 편지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의 편지로 삼으신 목적은 세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세상을 향한 편지로 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셔서 바울을 편지로 보내시고 바울이라는 복음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비록 세워진 고린도 교회가 종합 문제세트이지만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그리스도라는 편지를 읽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도와 선교사들의 마음과 헌신이 기록된 편지이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기록된....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때로 용기이며 순종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와 세상에 보내시는 편지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보내시면서 바울을 하나님의 편지로 사용하셨고, 오네시모를 하나님의 편지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을, 성도를, 교회를 하나님의 편지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오네시모라는 편지를 받은 빌레몬에게 그 또한 하나님의 편지가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편지가 되는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를 더한 믿음이며, 지혜를 더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2000년 전에 세상에 보내신 예수라는 편지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에게 그 편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 우리가 서로에게, 세상에게 하나님이 보내시는 편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삶에 대하여, 복음이 필요한 이 세상에 대하여 기억의 서랍에 오래 묵고 있는 편지가 아니라 읽혀지고 이해되고 실천되는 편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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