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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부흥 김나래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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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1.

 

* 본 문 : 히브리서 11장 32-40절

* 제 목 : 믿음의 부흥 

 

지난 주일 저녁에 워싱턴 지역에서 1박2일로 교단 목회자 가족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성일이와 승하가 그동안 사귀었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곳에 두고 저희 부부는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고 저는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들어갔던 아내가 허둥대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빨리 들어가보라고... 큰 일이 났다고 했습니다.  도둑이 들었나....하고는 들어가봤더니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2층 세면대 아래에 있는 수도관이 터졌습니다.(영상1)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집에서 4시 전에 나갔고 10시에 돌아왔으니까.... 그 사이에 터진 것은 분명하고 그동안 그야말로 콸콸콸 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2층 침실 바닥에 물이 첨벙첨벙했고, 1층 거실에도 발목 가까이 물이 차있었고, 지하 거실에는 이미 천장이 곳곳에서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시냇가도 아닌데 온 집안에 물 흐르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사진 1,2,3,4,5)  겨우 더 이상 물을 나오지 않게 만들고.... 아내는 친구 집에서, 저는 교회당 사무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보험회사에 연락했습니다.  일단 거처할 곳을 구하라고 하더군요.  지난 주간 계속 집을 청소하는 업체, 앞으로 수리할 업체, 우리가 그동안 지낼 곳을 준비해주는 업체, 전체 손해액을 산정하고 공사할 수 있도록 돕는 업체 등과 연락하고 의논하고 결정하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수습되어가고 있고, 저희가 임시로 지내는 거처에서 사는 일도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그동안 별 생각없이, 아니 좀 불만을 가졌었던 집보험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야.... 집 보험을 제대로 들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도 집이 망가졌는데.... 고치려면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돈이 들텐데.... 집을 새로 짓는 것과 비슷하다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험 참 좋다....는 생각하지 하게 되었습니다.  물 때문에 생긴 모든 손해를 다 보상해주고, 임시로 지낼 집에 대한 비용도 책임을 진다고 하니 어려움을 만난 중에 오히려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일을 수습하는 중에 보험회사와 접촉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믿음은 증거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을 다양한 말로 설명하고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1절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그들 안에 허락하신 믿음을 ‘증거’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2-3)  선조들 안에 허락된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믿음이 그들 안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을 때 그들의 가치가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그들의 변화가 11장 전체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32-40절에서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증거합니다.  이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고난과 핍박과 궁핍함을 넉넉히 믿음으로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40절에는 그들이 넉넉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11:40)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에 대해 담대할 수 있었고, 고난과 고통에 대해 인내할 수 있었고, 환란과 궁핍한 삶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왜요?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에 대해 하나님께서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으로 보상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세기 고난과 핍박이 일상화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말씀은 위로와 능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아름답고 귀한 복음을 제가 얻은 보험의 혜택 정도와 비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좋은 교훈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만든 보험의 제도를 통해서도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며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얻은 우리는 더욱 담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2. 외국인과 나그네가 되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성취와 노력은 무의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통해서 은혜와 복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아담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11:12)  다만 그들의 삶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13절에서 성경은 그들의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1:13)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지만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는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살면서 그들은 외국인이며 나그네임을 증명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갈대아 땅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본향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이방의 땅에서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했습니다.  죽기까지 믿음을 붙들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붙들었던 믿음, 그들에게 보장된 약속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했을까?  히브리서 11장이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4-16)  그들이 스스로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던 이유는 그들을 위해 예비된 한 성,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히브리서의 기자가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혹은 그가 비옥하고 좋은 땅을 만나면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착한 후 그 땅을 아버지의 땅처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해 준비하신  ‘하늘에 있는 한 성’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비교할 수 없는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성도와 교회에게 이 땅에 속한 도시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계속 아브라함이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준비하신 거룩한 성을 사모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창세기의 족장시대에 대한 기록에서 천국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비전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 등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더 나은 본향, 하늘에 있는 예비된 성을 사모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크게 두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아들에 대한 약속이고, 둘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과 그 자손이 넉넉하게 정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땅.... 현실성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그들이 이 약속을 믿는 믿음과 함께 죽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이삭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11장 11절에서 사라는 나이가 많아 단산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와 같은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단 하나, 이삭을 얻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브라함은 압니다.  단산했던 사라가 불가능했던 아들을 낳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이 거주할 땅과 나라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약속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가 믿었던 것은 더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소원의 성취를 믿는 것이 아니라 소원보다 더 아름답고 영원한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4. 예수를 바라보자!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의 믿음과 삶은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이 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당하던 일상의 고난과 핍박은 아브라함이 걸었던 광야의 길과 같습니다.  복음의 부르심을 받아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오늘의 안전과 내일의 평안을 보장할 수 없는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한 성도들이 내일 과연 함께 예배할 수 있을까.... 그들은 헤어질 때 샬롬을 기원하지만 다시 만나서 샬롬을 확인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런 신앙의 여정을 계속 걸어야 하는 것입니까?  히브리서가 필요했던 이유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의 선진들이 마음 가운데 증거와 확신을 가지고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도 아브라함처럼 본향으로, 그들의 이전의 삶으로, 안전하고 부족함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광야의 길을 갑니다.  스스로 이 땅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여깁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로, 이 땅에서 만족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히브리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히브리서에서는 이 믿음을 초대교회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가?  사람의 모든 논리와 세상의 질서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하나님이 가능하다고,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순종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여기며 이 땅 어디에도 소망과 만족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때와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했고, 그의 믿음이 초대교회에 증거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믿음을 본 받아서....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시험과 유혹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더 좋은 본향을 허락하심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약속에 대해 신실하신 분이므로 그들의 믿음이 그들의 삶으로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11장에 이어 12장에서 초대교회 이후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시대,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의 보증이며 약속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성,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교회와 우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세상의 그 어떤 보장, 보험, 약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확증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할 수 없고, 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는 더 나은 본향에 대한 약속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고, 이 믿음이 아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삽니다.  이 믿음의 부흥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교할 수 없는 더 나은 본향과 거룩한 성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발걸음을 함께, 계속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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