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지 않은 돌" | 김나래 | 2024-0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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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1.
* 본 문 : 다니엘 2장 31-35절 말씀 * 제 목 : ‘손 대지 않은 돌’
우리는 구약의 선지서 ‘다니엘서’하면 크게 세 사건을 기억합니다. 첫째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믿음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 이야기, 두 번째는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세 친구 이야기, 세 번째는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의 계략을 알면서도 기도의 시간과 자리를 지키다가 사자굴에 던져지는 다니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서는 역사적으로 있었던 이 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성경일까요? 다니엘서는 구약의 계시서, 예언서라고 불립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니엘서가 사건 중심의 역사서가 아니라 왜 계시의 말씀이 기록된 예언서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주전 6세기, 이스라엘이 있었던 근동지방은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북방의 강대국이던 앗수르와 바벨론, 남방의 강대국이던 애굽 사이에서 끼어 있는 약소국이었습니다. 바벨론을 큰 제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 유다까지 침략했습니다. 그는 3차례에 걸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유다는 국가의 근간이 완전히 무너지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했던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유다의 왕을 폐위시키고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새 왕을 세웠습니다. 새 왕이 자신들에게 거역하자 그의 눈을 빼고 아들은 죽여서 후사를 잇지 못하게 했으며, 왕과 왕의 가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많은 지식인들과 기술자와 관료들과 학자들과 성전을 꾸미며 찬양하던 예술가들이 바벨론의 영광을 위해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강가에서 눈물지으며 노래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는 회복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선지자들과 믿음을 지켜며 살았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 뜻을 물었습니다.
그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 또한 하나님께 같은 질문을 했을 겁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1. 느부갓네살의 두 얼굴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이해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대답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는 큰 두려움에 빠집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불면증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그는 전국의 학자들과 점쟁이들을 다 불러놓고는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그들에게 자신의 꿈을 해석하라고 요구합니다. 당연히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는 크게 진노했고, 모든 학자들과 점을 치는 사람들을 죽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의 기록을 보면 우리는 느부갓네살의 두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강력하고 교만한 제왕의 얼굴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없고, 자신보다 성공한 사람도 없으며, 자신보다 강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권력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고, 권력을 행사하여 즐길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얼굴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꿈에서 본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습니다.
2. 꿈의 해석
그가 꾼 꿈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 재현되고 해석됩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먼저 왕의 꿈을 설명합니다. 그는 한 신상을 봤습니다. 신상의 머리는 순금, 가슴과 두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쇠, 발은 쇠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34절과 35절입니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단 2:34-35)
돌에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왕이 꿈 속에서 그 돌을 보았을 때.... 딱 그렇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사람의 욕망과 영광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손을 대지 않은 돌’이 어디에선가 나왔습니다. 그 돌이 신상의 발을 쳐서 부쉈고, 신상 전체가 무너집니다. 그 아름다웠던 제국의 영광이 마치 여름 타작마당의 겨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 같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만든 제국의 영광을 한 번에 무너지게 했던 돌이 갑자기 태산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에 그 돌이 가득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마음이 너무 복잡합니다. 이 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을 생각하며 그는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날뛰고 있습니다.
3. 두려움의 정체
여러분은 그의 불안과 두려움에 동의가 되십니까? 세상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 그것을 이루고 지키고 있는 강력한 제국의 군주의 불면증이 이해되십니까? 혹시 여러분도 이런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섬기는 우상 가운데 가장 고차원적인 우상이 ‘권력’입니다. 이 우상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작용합니다. 하나는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에 초점이 있습니다. control의 욕구입니다. 내가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은 상황을, 더 많은 관계를 control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욕망.... 이것이 권력의 우상이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인생 내 뜻대로... 내 가족 내가 원하는 대로... 라고 생각하셨다면.... 여러분도 마음 한편에 느부갓네살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CONTROL 즉 권력의 욕망은 실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내 아내를, 내 남편을, 내 자녀를, 내가 친한 친구들을, 내 목장과 교회를 내 생각과 뜻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수고와 헌신과 사랑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권력의 우상의 또 하나의 측면은 ‘영광’에 있습니다. 이것은 권력의 행사가 주는 열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서 느부갓네살은 두라 평지에 20미터가 넘는 큰 신상을 세우는 것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절하게 합니다. 자신이 만든 제국에서 자신이 만든 권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control하면서 영광을 얻고 싶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을 받는 일에 마음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우상의 또 하나의 측면인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 여러분! 느부갓네살은 왜 안절부절 잠을 못이루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돌’,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나라와 권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신상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돌... 그 돌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우상으로 삼고 욕망하고 만족하며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그 어떤 두려운 존재를 느꼈습니다.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4. 어찌하여 자랑하느냐!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순금으로 된 머리는 느부갓네살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은과 동과 놋과 흙으로 상징되는 여러 제국들이 설 것입니다. 사람의 권세와 나라들이 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한 돌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나라가 설 것입니다. 그 돌이 신상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한 나라가 설 것입니다. 그 나라는 사람이 만든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의 권세와 영광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단 2:44-45)
다니엘은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느부갓네살왕은.... 놀랍니다.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큰 상을 내리고 그를 중용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 2장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느부갓네살에게 그가 이룬 모든 것은 결국 헛된 것이요 무너지고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나라, 사람에게 속하지 않는 권력, 사람의 욕망과 소원으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가 역사서가 아니라 예언서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의 정점에 있는 권력자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하셨습니다. 그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손대지 않은 뜨인 돌, 누구를 상징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왕국을 세우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영광이라는 우상에 취해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구원의 주, 생명의 주로 찾아오셔서 사람이 만든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다니엘서가 예언서인 것은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이방의 땅에서 비참한 포로의 삶을 사는 다니엘과 유대인들에게 믿음과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용기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고민할 것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빠졌던 권력의 우상... 우리들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기 우상화의 유혹에 빠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를 하나 보고 말씀을 마칩니다. 고린도전서 4장 7-8절을 보겠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전 4:7-8)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교만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에 집중하면서 은사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개발하고 만든 소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책망합니다. “너희에게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 너희가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 왜 마치 그것이 너희들의 것인 것처럼 자랑하느냐? 왜 너희가 스스로 왕이 되어 선택하고 결정하고 자랑하고 기쁨을 누리려고 하느냐? 왜 너희의 신앙의 도구인 은사가 너희를 교만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우상이 되고 있느냐?”
오늘 우리는 만족과 교만이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의 한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은 신상 하나를 품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우리의 삶의 길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의 이유입니다. 우상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사모하며 선포하며 증거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만족과 영광이 아닌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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