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9 다니엘의 지혜 - 3) 우상과 짐승의 시대 | 김나래 | 2024-06-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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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다니엘 12장 8-13 * 제 목 : 다니엘의 지혜 - 3) 우상과 짐승의 시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있었지요? 이 말은 프랑스의 양치기들이 사용하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의 시간을 말합니다. 들판에 풀어놓은 양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양치기들의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 저 언덕 너머에서 양들과 함께 다가오는 실루엣이 있습니다. 그런데 헛갈립니다.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그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야생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내 양을 보호하고 오는 것인지, 내 양을 해치기 위해 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양치기들은 그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이 말은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기 힘들고, 바른 정보와 거짓 정보를 판단하기 힘들고,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섞여 있는 것 같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색깔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 사회가 꼭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주간에 한국의 모든 뉴스 매체에서 대서특필한 이슈가 있습니다. 경북 영일만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한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2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국정브리핑을 하면서 직접 제공한 뉴스입니다. 석유 혹은 천연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20%이고... 그래서 100%로 만들기 위해서 5개 이상을 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유전에 대해 보고한 Act Geo라는 회사가 재미있습니다. 이 회사는 자기 집에서 일을 하는 1인 기업입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 유전을 발견하는 일에 참여하기보다 유전에 대한 교육을 해왔으며, 영일만 유전에 대한 용역을 받기 전까지는 1년 매출이 3만불이 안되는 회사였고, 한국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은 지난 해 비로소 50억불의 매출이 있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회사는 한국 정부와 계약을 맺었던 2023년 2월, 회사가 소재하고 있는 텍사스주로부터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다는 사실이 〈시사IN〉이라는 한 언론사의 취재 결과 확인되었습다. 영업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 ‘자격 박탈’ 행정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즉 한 나라의 정부가 허가받지 않은 다른 나라의 1인 회사와 장차 조 단위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정부 측에서는 규모는 작아도 세계적인 권위와 실력을 가진 회사라고 주장하지만 .... 연 매출 23조원에 4500명이 일하는 세계적인 유전개발업체인 ‘우드사이드’는 한국 석유공사와 협력하여 이 지역을 15년간 탐사했고, 결국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고 2023년초부터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나온 같은 검사 결과를 놓고 대표적인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보다 4배가 많은 매장량이 있다는 1인 기업과 지난 15년의 탐사의 결과로 전혀 가망이 없다는 세계적인 석유탐사 기업의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가 나오면 좋은 것이지 왜 딴지를 거느냐는 주장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왜 이렇게 허술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느냐는 불신이 서로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를 개라고 생각하는 늑대들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1. 우상과 짐승의 시대
지난 2월부터 말씀을 통해서 만나는 다니엘의 시대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서에는 많은 상징과 예언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의 예언은 크게 두 가지 환상을 근거로 합니다. 다니엘 2장에서 바벨론 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 시대는 우상의 시대입니다. 우상을 구성하는 여러 금속들은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제국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다니엘 7장에서 다니엘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는 짐승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첫 번째 짐승은 날개 달린 사자입니다. 두 번째는 어금니 셋이 있는 곰입니다. 세 번째는 네 날개와 네 머리를 가진 표범입니다. 그 뒤에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진 더 크고 무서운 네 번째 짐승이 나옵니다. 특히 이 네 번째 짐승은 7개의 머리에 10개의 뿔들을 가지고 있고 사자의 입 , 곰의 발 , 표범의 몸을 하고 있는 대단히 흉폭한 존재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신상은 바벨론과 그 이후의 각 제국을 상징한다면 다니엘의 꿈에 나타는 짐승들은 그 제국들이 가진 폭력적 본질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시대는 ‘우상과 짐승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 형상화된 우상을 만들어 예배했습니다. 짐승으로 형상화된 세상의 권력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우상과 짐승의 시대에 무엇을 소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은 계속될 것이며 과연 하나님이 주신 언약과 축복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을까요? 네,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70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알게 하셨습니다. 그가 또 기도하자 하나님은 "Go your way, Daniel!"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응답하십니다. 그 시대를 이기는 힘이 무슨 놀라운 초능력이나 하늘로부터 내리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기도하며 예배하는 성도의 일상의 삶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알고 보면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데.... 여전히 그는 제국의 관료가 되어 하루하루를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는 10대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의 세월을 원수의 땅에서 살았습니다. 자신은 겨우 믿음과 말씀으로 살았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 세월동안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복과 부흥에 대한 소망을 잊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70년만의 포로의 귀환을 명령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국 페르시아에 남았습니다. 왜 그들은 제국의 땅에 남아서 살기로 결정했을까요? 고향으로 돌아간들.... 이 우상과 짐승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미 우상과 짐승의 시대, 세상의 가치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기도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우상과 짐승의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소망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길고 긴 어둠의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 우상과 짐승의 시간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2. 바로의 시간, 요셉의 소망
우리는 그 답을 다니엘과 참 비슷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다니엘과 비슷한 나이에 제국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또한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고,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바로는 나이 30의 요셉을 총리로 세우면서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애굽의 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줍니다. 또 하나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줍니다. ‘사브넷바네아’라는 이름입니다.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이름의 뜻을 ‘신비의 발견자(a finder of mysteries)’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이 두 가지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요셉을 바로의 사람, 애굽 사람으로 만들고자 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결혼을 시키고 다른 이름을 부여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가 요셉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시대가 바로 우상과 짐승의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많은 우상을 섬기며 권위를 부여하고 수많은 짐승의 형상에 자신의 권력을 심었습니다. 그 정점에 있었던 바로는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우상과 짐승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결혼과 새 이름은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의 생각은 성공했을까요? 아마도 바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요셉의 꿈의 해석을 따라 애굽의 정치와 경제가 바뀌었고 예언대로 모든 주변 지역에 흉년이 들었을 때 잘 준비되었던 애굽은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가족들까지 애굽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는 아마도 요셉의 모든 지혜와 능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비로소 자신 앞에 두려워 떨면서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형님들에게 오히려 그는 복음을 전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요셉은 자신이 우상과 짐승의 시대를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시대는 요셉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소원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셉이 우상과 짐승의 시대에 소비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구원자로서의 삶을 살며, 장차 오실 구원자를 예표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때까지 성경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구원자의 개념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요셉 인생을 우상과 짐승의 시대에서 구원하는 참된 지혜와 소망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입니다.
3. 디오누시오, 아테네에서
늑대와 개의 시간, 혹은 우상과 짐승의 시대를 살았던 또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중에 아테네에서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잘 알려진 고대의 큰 도시였고, 당시 지중해 주변의 모든 나라를 휩쓸고 있었던 헬레니즘의 본산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성으로 들어가서 처음 본 것은 수 많은 우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식과 지혜로 풀 수 없는 모든 것을 신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에서는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행 17:22-23) 라고 했습니다. 아테네라는 도시의 이름은 ‘아테나’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왔습니다.(사진1) 아테나 여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신들의 왕 제우스의 딸입니다. ‘신들의 궁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로 지식과 지혜의 여신이며, 전쟁과 평화의 여신이며, 예술과 학문의 여신입니다. 정의감이 투철한 전사와 영웅을 상징하고 명예와 영광의 여신이기도 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섬겼습니다. 결국 그 시대 최고의 지성과 문명을 자랑하던 아테네는 알고보니 우상의 도시이며, 로마의 짐승과 같은 권력이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바로 그 도시 아테네에서 하나님이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라는 아테네 북서쪽에 있는 약 115m 높이의 석회암 언덕에 올라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레오바고가 워낙 위엄있게 서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 사람들은 그 곁에 아테네의 대법원을 세웠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를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을 전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로 성전을 관리하던 제사장들의 미움을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행전에 의하면 아레오바고를 관리하던 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디오누시오’입니다. 그가 아레오바고를 지키는 관리였다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우상과 짐승을 섬기는 삶을 주관해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만납니다. 행 17:34를 봅시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 17:34) 역사가 요세푸스는 디오누시오가 아테네의 제 2대 주교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4. 우리 시대의 지혜와 소망
성도 여러분, 오래 전 요셉의 시대부터 다니엘의 시대를 거쳐 초대교회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요셉의 시대에는 바로의 권력으로 나타났고, 다니엘의 시대에는 느부갓네살의 신상과 다니엘의 짐승의 꿈을 통해 나타났고, 1세기 초대교회의 시대에는 헬라의 문화와 로마의 권력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그렇습니다. 모두 우상과 짐승의 시대입니다. 우상은 우리 마음의 모든 소원과 욕망이 형상화된 것이라면 짐승은 그 권력이 드러나고 행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세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에 대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각각의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소망을 허락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 시대를 이기고 구원자를 예표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까? 다니엘은 어떻게 절망의 시대에 참된 지혜자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아테네의 아레오바고를 지키던 디오누시오는 어떻게 우상과 짐승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까? 요셉이 고백한 대로 자신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다니엘이 세상에서 말미암지 않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름부은 자를 소망할 때였습니다. 디오누시오가 바울을 통해 들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와 늑대의 시간을 살면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인상’에 속지 말아라... 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 사람은 늘 물린 상처 속에 살겠다... 생각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이기는 법은 우리의 내면에 분명한 가치의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상과 짐승의 시대를 이기는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과 다니엘과 바울과 디오누시오는 우리들에게 아주 좋은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옵니다. 짐승의 시대를 사는 교회의 소망은 기름 부으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데서 옵니다. 우리 시대의 지혜와 소망이 더 풍요하고 안락하고 즐겁고 강력하고 화려한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음을 고백하며 증거하며 살아가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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