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예수 그리스도 | na kim | 2016-0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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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2:23-25절 개역한글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015. 12. 27. * 본 문 : 요한복음 12장 23-25절 말씀 * 제 목 : 씨앗, 예수 그리스도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대기 즉 공기의 맛입니다.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고국의 냄새여서 좋아야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맑고 깨끗한 공기의 맛은 사라졌습니다. 봄이 되면 더 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입니다. 각종 오염물질까지 섞여 있어서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황사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인위쩐(殷玉珍)’이라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20세가 되던 1985년, 그녀의 아버지가 친구와 맺은 약속 때문에 그 친구의 아들인 바이완샹에게 시집을 가야했습니다. 신혼집은 내몽고 사막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집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토굴에 가까웠습니다. 금방 주저앉을 것 같은 천장, 흙이 우수수 떨어지는 벽, 다리가 부러진 식탁, 냄새나는 이불 한 채, 이가 다 빠진 그릇들, 성한 냄비 하나 없는 부엌..... 처음에는 사막에서 헤매다 죽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착한 남편 바이완샹이 눈물로 매달렸습니다. 결국 떠나지 못한 그녀는 남편에게 제안합니다. 자신들이 사는 곳에 꽃을 심어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자.... 10년 안에 눈앞의 모든 모래 언덕을 숲으로 만들자... 그리고 친척들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 나무 묘목 600그루를 사서 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묘목을 사와서 심기를 반복합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사막과의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의 징베이탕(井背唐)이라는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펼쳐진 꿈이 많은 한 여인의 이야기를 잠시 보실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qNcnmFmV54w (처음부터 4:47까지) 그녀는 지금 1400만 평이 넘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숲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갖가지 채소가 익어 가는 밭과, 가로수가 늘어선 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환경운동가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사막 생태 복원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인사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 산둥 성의 군인들, 정부 관리들, 산시 성의 농부와 유목민들이 끊임없이 찾아와서 그녀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나무에 물을 주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더 넓은 사막의 땅에 풀씨를 뿌리러 갑니다.
1. 씨앗으로 설명하는 천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설명하시면서 많은 이미지들을 사용하십니다. 이 땅에 없는 것을 이 땅의 언어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것들로 형상화해서 설명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설명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천국에 대한 비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미지가 ‘잔치’와 ‘씨’입니다. 그중에 씨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농사문화와 관련해서 다양한 설명과 더불어 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씨...와 관련한 천국 비유 중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씨 뿌리는 비유도 있고, 겨자씨 비유도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말씀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왜, 누구에게, 언제’ 하셨을까요? 제가 조금 전에 여러분에게 “왜, 누구에게, 언제”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이 비유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자, 먼저 예수님은 언제 이 비유를 주셨을까요?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유대인의 명절, 즉 유월절이 다가옵니다. 축제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축제일일까요? 아닙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는 날에 예수님은 영원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3절에 보시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을 얻을 때’란 십자가에서의 죽음, 자신이 제물로 드려 지는 때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누구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합니다. 왜 말씀하셨을까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십자가의 길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자신은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끝을 의미하는 죽음이 아닙니다. 더 풍성한 생명을 위한 희생이자 헌신입니다. 내가 죽어서 다른 생명을 얻습니다. 내가 씨앗으로 희생해서 또 다른 많은 씨앗들을 만듭니다. 저는 NIV 성경이 번역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정개역이나 KJV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NIV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 많은 열매를 맺는다가 아니라 ‘많은 씨를 생산한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씨가 열매를 맺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씨... 수많은 열매는 맺을 수 있도록 생명을 품고 있는 씨를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2. 한 알의 밀알, 예수님 열매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지만 씨는 그 속에 생명이 있어서 또 다른 원인,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주신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결과로 만들어질 또 다른 ‘씨’들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 씨는 누구입니까?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교회가 되는 성도들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많은 신앙의 선조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과 저,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거친 광야, 죽음의 사막에 씨로 심깁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뿌려집니다. 죽임 당합니다. 부정당합니다. 외면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십니다. 그것이 그 씨앗 안에 있는 생명이 세상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그 씨앗이 싹이 트고 성장하는 길입니다. 성장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렇게 만들어진 씨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오늘 모든 현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네가 나의 씨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너는 어떤 씨로 살고 싶으냐?” “너도 나처럼....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있겠느냐?” “너도 나처럼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씨가 될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통해서 나의 생명을 세상에 전할 수 있겠느냐?” 3. 죽음과 새생명의 경계 그런데 알고 보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사진 1,2) 이것이 팔레스타인에서 자라는 밀의 사진입니다. (사진 3) 이것이 들판에 뿌려지는 씨의 형태로 된 밀입니다. (사진 4)이것이 밀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밀의 참모습입니다. 밀이 땅에 떨어져서 적절한 환경을 만나서 싹이 튼다고 합시다.(밀 5) 이것은 밀의 죽음입니까? 아니면 밀이 새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까? 실은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밀알 속에 숨어 있고 감추어져 있던 생명이 껍질을 깨고 나와서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새생명이요,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며, 파괴가 아닌 성장을 말합니다. 껍질이 부숴져야 안에 있는 생명이 세상으로 푸른 잎을 틔우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비로소 생명의 활동을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비로소 성장이 시작되고 수많은 또 다른 씨앗을 만들 수 있는 활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던 껍질이 부숴지면서 오히려 그 생명이 자라는 자양분이 됩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그대로 있지 않고 자기 파괴의 과정을 거쳐서 새 생명으로 움트는 일, 성장하여 또 다른 수많은 또 다른 씨를 만들어내는 일은 하나의 연속된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이 과정 속에 우리들이 자신을 대입해보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이라는 한 알의 밀알이 심겨진 밭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복음을 심으셨고, 자신을 심으셨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내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있고, 새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로 말미암아 또 다른 씨앗을 만들고 있습니까? 있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없다면.... 우리의 삶에 열매와 또 다른 씨앗이 없다면... 고민하셔야 합니다. 이 일련의 연속된 과정에서.... 한 부분에 단절이 있는 것입니다. 한 부분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4. 씨앗, 열매 아닌 씨앗! 설교의 서론에서 소개해드린 인위쩐이라는 여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일군 숲의 혜택을 다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눈물과 땀의 열매는 아마도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녀의 자녀들... 그리고 중국 사회와 한국까지 모두가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녀의 노력의 댓가를 사람들이 열매로 즐기기만 한다면.... 그녀의 땀과 눈물을 곧 사막으로 변할 것입니다. 한 세대의 성공담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세대가 숲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녀처럼 수고하고 땀 흘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몽고의 사막으로 가서 그녀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베워야 할 것은 그녀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은 그녀가 일군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 되는 그녀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압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이 한 절의 말씀에는 “따라오려거든...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작과 끝입니다. 그러면 중간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자기를 부인하는 일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사명을 감당한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어떤 과정이 필요합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부인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내게 가장 소중하던 것,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 내가 그것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세상의 여러 가치들을 말합니다. 자존심일 수 있고, 두려움일 수 있고, 염려와 걱정일 수 있고, 재정일 수 있고,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속한 관계일 수 있고, 고착화된 가치관과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벗겨져야 합니다.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껍질들로부터의 자유로워야합니다. 자기 부정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또 다른 씨앗을 생산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껍질을 깨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벗어나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씨는 들어와 있으되 발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또 다른 씨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열매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예수님과 닮은, 예수님처럼 또 다른 씨를 만드는 사명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인위쩐이라는 여성이 열매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사막에 씨를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열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유혹합니다. 예수,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도 영광은 얻지 못할 것인데... 당신의 수고와 고통의 열매가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인데... 차라리 타협하고 차라리 외면하면 모든 영광과 업적이 당신에게 돌아갈텐데 왜 굳이 십자가를 지려 하는가? 예수님은 열매가 아닌 또 다른 씨에 관심을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는 씨앗이 되는 사람들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우리들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어 새생명을 우리 안에 잉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초대교회는 한 알의 밀알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 알의 말알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대로 계시겠습니까? 여전히 생명과 가능성은 충만한데... 그대로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열매 맺고, 또 다른 씨를 만드시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죽어지고 썩어져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와 생명을 드러내는 일.... 주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손 붙들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생명을 만다는 사역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함께 토론할 질문 1. 예수님은 자신을 한 알의 밀알로 표현하셨습니다. 그 밀알은 세상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2. 세상에 떨어진 밀알이 썩고 죽어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밀알의 열매는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3. 씨앗은 떨어서져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씨앗이 만드는 나무로서, 열매로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4. 열매 안에는 또 다른 씨가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예수님의 열매가 되고 씨가 되어서 다시 세상에 심겨야 합니다. 또 다른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씨앗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열매 맺게 할 것인지 이야기 해 봅시다. * 함께 기도할 제목 1. 우리가 믿는 것과 우리가 사는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가 믿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또 다른 밀알을 맺을 수 있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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