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삶의 원칙
1. 먼저 생각하기
암병동
도종환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일 때도
우리들은 온 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참답게 산다는 것은
참답게 싸운다는 것
빼앗기지 않고 되찾겠다는 것
생명과 양심과 믿음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고
정의와 자유와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니
밀물처럼 달려오는 츱츱한 칼바람에 맞서
끝끝내 물러서지 않는 것도
우리들의 싸움이 지켜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살아 있고
살아 있어야 하므로
우리가 싸우는 때문
참답게 싸운다는 것이
참답게 산다는 것이기 때문
희망을 가진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앞길 전혀 보이지 않은 어둠일 때도
우리들은 암흑과 싸우거늘
빛이 보이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새벽을 믿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2. 주의해서 성경읽기
우리의 삶에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성도의 삶이 늘 복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요, 고통과 고난과 질병이 성도들을 비켜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무조건 감사할 수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과 고통 앞에서 과연 어떤 삶과 믿음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일까요?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요? 다음의 세 가지 성경 본문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 베드로전서 2:19-20
이 본문에서 제시하는 고난 받는 성도가 선택해야 할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 창세기 50:19-21
요셉에게서 본받고 싶은 신앙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마 26:36-46
고난을 준비하는 예수님의 신앙적 태도를 분문에서 몇가지로 정리해 봅시다.
3. 깊이 고민하기
베드로 사도는 그의 첫 번째 편지를 통해서 고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성도에게 부조리한 고난이 다가온다고 해서 ‘선한 삶’의 원칙을 포기할 수
는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 부조리와 거짓이 사탄의 것이라면 의로움과 선함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 중에 있다고 해서 선한 삶의 원칙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요, 사탄의 전략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모세의 단 한 번의 분노, 형이었던 암논의 악행에 대한 압살롬의 복수, 여동생 디나에게 악한 일을 했다는 이유로 한 족속을 몰살시킨 야곱의 아들들의 행위 등에 대해 하나님은 분명히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의로움’이라는 삶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의 형틀에 내어준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성도들의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선하신 재판장이 되십니다.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장래 우리를 재판하실 기준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살아감’이라는 분명한 기준 위에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권면한 성경적 원칙을 가장 분명하게 지키며 살았던 사람은 바로 요셉입니다. 그의 삶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로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삶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19-21에서 그는 성경에서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간증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황하지도 마십시오.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우리 가정의 어려운 때를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형님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눈을 들어서 이 동생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은 두려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고난의 때에 자신에게 그러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넉넉하게 이겨내고 자신의 작은 삶 속에 하나님의 큰 뜻을 이뤄낸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요셉이 형들에게 죽임 당할 뻔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당하고 누명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요셉이 십 수년 간 옥에 갇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다면 요셉에게 다가온 모든 불의와 고난이 하나님의 책임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거짓과 부정의 방법으로 성도를 연단하고 교훈하시는 분일까요? 요셉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요셉의 삶에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난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죄 많은 세상 가운데 사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고난 앞에 고민하며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고난의 길인 줄을 알면서도 오직 그 길만을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올 때 믿음으로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는 것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 고난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4. 적용하기
도종환 시인은 ‘암병동’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희망만 있어도 우리를 그 희망을 빛으로 삼고 거대한 어둠과 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작은 희망도 아니요 꺼져가는 등불도 아닙니다. 이미 죄악 가운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향해 비춰진 밝고도 환한 등불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빛 가운데 행하며 그 빛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우리 안에, 우리가 빛 안에 살아갈 때 어둠은 성도의 삶을 침탈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삶에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까? 먼저 말씀으로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로운 삶을 포기하지 않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성도로서 하나님에게서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은혜와 자랑이 없을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관용하는 마음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넉넉히 이기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고난을 대하며 승리할 때입니다. 성도의 넉넉한 믿음과 성품으로 고난을 넘어서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