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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생애 - 7. 십자가(히 10:10-18) 이응도 목사 201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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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생애 - 7. 십자가(히 10:10-18)

1. 먼저 생각하기

우리는 죽어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세상을 본다. 모든 백성을 그분께로 이끈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분은 거부당한 이들, 고독한 이들, 범죄자들이 죽음을 겪으셨을 뿐 아니라 높고 권세 있고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이 죽음은, 일상적인 삶을 살다 늙고 쇠하여져서 여하간 자신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단순한 사람들 모두의 죽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홀로 죽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와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하고 우리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믿어야 한다. 어쨌던 죽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는 방식은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 뒤를 따라 오는 사람들이 살아갈 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죽음은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셔서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직시하고 죽음이 최후의 단어가 아님을 믿으라고 말이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우리의 세계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죽어가는 그들의 몸을 팔로 안고 우리 팔보다 더 강한 팔이 그들을 영접하시고 그들이 늘 소망했던 평안과 기쁨을 주실 것임을 믿을 수 있다.

죽음에 관한 한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바로 이 죽어가는 인류에게로 오셨다.

헨리 나우웬 – 예수와 함께 걷는 삶 p. 80-81


2. 깊이 묵상하기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종교 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은 죄를 범한 유대인을 돌로 쳐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이나 스데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직접 돌로 쳐서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동요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몇 가지 계략을 짜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계략은 정치적인 상황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2-16을 읽고 다음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을 나눠봅시다.

1)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씌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빌라도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틀에 내어주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15절에는 대제사장들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다른 왕이 없다’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고백은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4) 대제사장들과 빌라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위협당한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입니까?
5) 만일 우리들이 빌라도의 자리에, 혹은 유대인 중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들은 매일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산헤드린의 두번째 계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치범들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 관례였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것은 예외적인 사항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산헤드린이 노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신 21:23)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갈3:13) 그 죽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체포당하심과 사형 당하심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하루 밤과 하루 낮 사이였습니다. 법치국가였던 로마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그의 추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막 15:15) 십자가의 형을 허락한 것입니다.
상황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결국 십자가 위에 매달리게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침묵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눅 23:35) 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결국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묵과 순종의 이유에 대해서 함께 생각을 나눠봅시다. 십자가의 고통의 길 외에는 인류를 구원하실 다른 길은 없었을까요? 반드시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길일까요? 우리 또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요?(히 9:22)
그렇다면 그의 피는 얼마만큼 유효합니까? (히 10:10, 17-18) 누구에게까지 유효합니까?

결국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뒤 돌아봄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의 끝에 십자가가 있고 수치와 모욕과 상처와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 위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 길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그 길 위에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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