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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 3. 우리에게 있는 것(행 3:1-10) 이응도 목사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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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 3. 우리에게 있는 것(행 3:1-10)

1. 먼저 생각하기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살아야 얼마를 산다고, 결국 인생 70인데,
그 70의 절반 넘는 세월을 앉은뱅이로 살아온 그대는,
단 한번 평등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본 적 없고
단 한번 동정 없는, 경멸 없는, 절망 없는 시선을 받아본 적 없는 그대는
성전 한 모퉁이 미문 곁에 앉아
물기어린 눈동자로 저녁 한끼를 구걸하는 그대는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오르고
인생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손끝으로 동전 한두닢을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늘보다 높이 올라가는데,
데구르르 굴러가는 동전을 놓칠까
엉금엉금 두 팔꿈치로 땅을 기면서
한끼 떡을 위해 차가운 흙바닥에 뺨을 긁히던 사람아!
부나 명예나 권력이나 혹은 살가운 사람들의 정이 아니라
오직 야윈 배를 채워줄 동전 한 닢은 소망하며
단 하루 더 생명을 사람들의 동정심에 맡겨버린 사람아!
너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떡과 돈으로 사는 사람은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성전을 오르고
권력과 명예로 사는 사람은 부푼 욕망을 품고 성전을 오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단 하나를 가슴에 품고 이 전을 오르나니,

오늘 너의 주린 배를 채울 떡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품 속 깊이 숨겨둘 금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오직 하나,
너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네게 주노니
앉은 그대, 눈을 들어 그 이름을 바라보라!
일어나 걸으라!

2. 깊이 묵상하기

사도행전 3장에서 소개되는 앉은뱅이의 이야기는 내용 자체가 지닌 의미도 대단하지만 예루
살렘 교회에 미친 영향 또한 큰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교회가 가진 것은 무엇이며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의 기도의 전통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중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를 정해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고 성경은 두 사도가 그 전통을 따라 성전을 오르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경건의 습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두번째 함께 기도하고 사역하는 것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두 사도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3,5) 베드로는 무엇이라 말하며 어떻게 행동했습니까?(6,7) 오늘날 사회가 교회에 요구하는 것과 교회가 사회에 줄 수 있는 것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 둘 중에 우선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사도는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이름이란 한 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 앉은뱅이가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 안에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함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을 믿고 의지하며 살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한국 교회를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신사 참배와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의 문제와 대형교회 세습 문제, 목회자와 교회가 연류된 각종 비리들을 보도하면서 한국 교회를 향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대하 많이 무력합니다. 세속적인 물질 중심의 세계관이 이미 교회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물질로는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교황 이노센트 2세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퀴나스가 교황을 방문하자 마침 교황은 탁자에 가득한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아퀴나스를 보자 희색이 만면하여 “토마스, 당신도 보다시피 교회는 더이상 ‘은과 금이 내게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좋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퀴나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나 걸으라’고 하는 명령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조차 알지 못하는 ‘진정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8-10절에서 앉은뱅이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그가 더 이상 ‘은과 금’을 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아직 우리에게 ‘은과 금’을 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오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있는 참된 보화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우리의 심령 가장 깊은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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