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 템피 장로교회 설교
* 본 문 : 창세기 47장 7-10절 말씀
* 제 목 : 아름다운 인생
템피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예, 저는 작년 이맘 때 교회를 방문하고 함께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는 분들 중에서 제가 어떤 말씀을 나누었는지 생각나는 분 있습니까? 복 받으실 겁니다. 교회를 다시 방문하고 말씀을 나누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번에 다시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서 어떤 말씀을 나눌까 고민하던 중에 지난 해 템피 장로교회를 방문하기 직전에 있었던 일과 관련해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1. “누구나 어디 한쪽이 문드러진 채로 살아간다.”
첫 번째 사람은 ‘갈릴리 마을’이라는 기독교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된 분입니다. 김재식이라는 분이고, ‘희망으로’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입니다. 저 역시 그 사이트에 자주 글을 쓰는 인연으로 서로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작년 이맘 때 이런 글 하나를 썼습니다. 제목은
“누구나 어디 한 쪽이 문드러진 채로 살아간다”입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위층에 올라가서 치료를 받는 시간이 하루에 한 번씩 있다. 갈 때마다 많이 당황스러운 모습을 본다. 서른이 채 안되어 보이는 청년 한사람이 다리를 절면서 걷는 연습을 한다. 곁에는 아버지인 듯 한 중년 아저씨가 한 팔로 허리춤을 잡고 마주보는 자세로 뒷걸음으로 간다.
그런데 갑자기 퍽!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참으로 민망한 “야! 이xx야! 똑바로 안 해?” 욕이 들려온다. 하루 이틀은 무슨 속상할 일이 있나보다 했는데 날마다 같은 시간에 계속 보게 된다. 얻어맞은 청년은 몸에 장애가 있어 보이고 정신도 온전치 않은가 보다. 주눅들은 표정으로 아프다 소리도 않고 대들지도 않고 묵묵히 용을 쓰면서 걷는다.
‘왜 저렇게 해야 할까?’ 마음이 너무 무거워진다. 많은 날들을 보다보니 또 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온 얼굴에 땀이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청년을 샤워실 앞에 세워 놓고 환자복이랑 세면도구를 다 들고 와서 씻기러 들어가곤 한다. 두 사람이 다 지치도록 재활운동을 하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와서 또 다른 치료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까? 두 사람이 다... 날마다 주먹으로 배를 퍽! 퍽! 때리고 욕을 하며 재활 훈련을 시키는 아버지나 겁먹고 슬픈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연습을 하는 청년이나...
그 아버지의 표정이 잊어지지 않는다. 무겁고 진지하며 웃음기라고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 한 번의 사고로 무너진 인생과 멀쩡하고 잘생긴 아들의 날아 가버린 미래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을 게다. 밉고 지친 심신을 집념으로 일으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땀으로 범벅을 하는 그 뒤에 담긴 고통에 대해 뭐라고 쉽게 단정을 지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 병원에 어느 누군들 안그럴까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불행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계절마다 다른 옷도 입어 볼 수 있을까? 친구나 형제를 돌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고통에 삶을 저당 잡혀버린 사람들...
굳이 병원만 그럴까? 일순간에 일어난 일로 일생의 방향이 틀어져버린 숱한 사람들이 있다. 비록 보이는 일이 아닌 것으로도 심한 상처나 쌓인 갈등으로 몸 안의 한쪽 어딘가가 문드러진 채로 일생을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그냥 보면 낄낄거리며 아무 근심도 없이 잘만 살아가는 부러운 사람도 들여다보면 구멍 숭숭 뚫려 있고, 털어놓고 들어주다보면 눈물 펑펑 쏟아지는 그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모두 부여안고 추스르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위층의 그 아버지와 아들처럼 비장하게 목표를 향해 갈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멍들은 부분을 쓰다듬으며 표 안나게 미소 지으며 살아가기도 하고... 돌아보면 어처구니없고, 왜 내게 그런 일이 생겼던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부디 너무 딱딱하지 않게 살고 싶다. 눈물도 미소도 사라지고 분노만으로는 살지 않기를 기도하고 싶다. 새살이 돋아나듯 심령의 상처도 아물고 무게도 가벼워지면서 다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서로 말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설혹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더라도 흉이나 판단은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깊은 후유증을 안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인들 편할까? 나는 그만한 발버둥이라도 치며 살려고 하는지를 돌아보며... ‘누구나 어디 한쪽이 문드러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여러분은 이 분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인생에도 어느 한 구석은 무너져 있습니까? 어느 한 구석이 문드러진 채로 살고 계십니까?
2. 아파요, 인생이 참 아파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두 번째 사람은 작년 이맘 때 만난 한 권사님입니다. 작년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덴버에 있는 한 교회에서 성경적 상담을 주제로 목금토일 집회를 했었습니다. 그때 그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요일 집회를 마친 후에 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 교인도 아니었습니다. 집회 주제가 성경적 상담이라는 말을 듣고 꼭 오고 싶었고,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참 고운 분이셨는데,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오신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과 결혼까지를 다 마친 후 이제 정말 죽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차에 기름을 채우고 자신이 그 동안 봐두었던 절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절벽은 사람도 잘 오지 않는, 노인 한 사람 쯤은 떨어져 죽어도 흔적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어서 남편의 마음에 아주 작은 상처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달리던 중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차가 뜨거운 광야 한 가운데서 서고 말았습니다. ‘그래, 나는 항상 이렇지.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지....’ 너무 화가 나서 차에서 내려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것이 광야의 서편을 붉게 물들인 석양이었습니다.(사진) 참 아름다웠습니다. ‘자녀들만 잘 키우고 나면 꼭 죽음으로 복수하리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지난 40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 인생이 마치 지금 지는 해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아픔이 있고, 여전이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미국으로 자녀들과 함께 보내시고,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도록 도우셨고, 지금은 보석같은 손주들까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상처와 눈물만으로 얼룩지고, 분노와 증오만으로 지탱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천천히 지고 있는 해를 보니.... ‘아.... 참 아름답다.... 이렇게 하루가 가고 이렇게 내 인생이 지는 것인데, 참 아름다운 것이 인생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에 돌아와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날 권사님은 제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 스스로를 죽여서 남편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난 40년을 살아왔는데, 살고 보니 그 인생에도 아름다움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차에 시동이 다시 걸렸습니다. 천천히 차를 몰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모태신앙인데 왜 그렇게 쉬운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파요, 인생이 참 아파요.....’를 외치며 상처와 아픔에 집중하다보니 자신의 인생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 험악한 세월, 야곱의 일생
세 번째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오늘 성경 본문의 주인공 야곱입니다. 야곱은 지금 바로 앞에 섰습니다. 자신이 지나온 인생을 돌아봅니다. 참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늘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며 살아왔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은 또 자신을 떠나버렸습니다. 부모가 떠났고, 형제도 멀어졌습니다. 친척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세상을 먼저 떠났고,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십 수년을 절망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좋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될텐데.... 좀더 즐겁게, 좀더 감사하면서, 좀더 기다리면서 살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앞에 한숨 쉬며 고백하기를 “내 나그네 인생 130년, 참 험악하게 살았습니다. 참 아프게,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성공해보겠다고,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쳤는데. 발버둥친만큼 아프게, 발버둥친만큼 눈물겹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눈물과 한숨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야곱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이 믿음이 없어서, 욕심이 앞섰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의 인생에는 한숨이 없었습니까? 모세는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어떠하고,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삶이 늘 즐겁고 늘 형통했을까요? 그들은 비록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이라 스스로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들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 삶의 상처와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는 다 있습니다. 애굽에서 쫓겨나와 미디안 광야를 양들과 함께 헤매던 모세에게도 있었고, 아내를 두 번이나 잃었던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평생을 예수 부인한 자로 살았던 베드로에게도 있었고, 성도를 돌로 쳐죽인 아픈 기억을 가져야 했던 바울에게도 있었습니다. 어디 그들뿐입니까? 수천년을 지나 한국의 어느 병원에 입원한 한 성도의 눈에도 사람들의 가슴마다 썩어가는 상처가 보이고 있고, 조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필라델피아에도 그 상처로 살아가는 멍든 가슴들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덴버에도, 아리조나 템피에도 멍든 가슴 눈물 고이게 하는 아픔과 고통이 늘 숨 쉬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디 한쪽이 문드러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래서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7절과 10절, 말씀의 시작과 끝에 중요한 비밀 한 가지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마음 한 켠, 아니 마음 곳곳에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온 야곱, 그 상처가 썩고 곪아서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야곱을 하나님은 애굽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 당시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강한 왕이었던 바로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삶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본인의 삶의 상처와 아픔, 눈물과 고통과 관계없이 복을 전하는 사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욕심대로 살아왔고 자기 의지대로 살아왔는데, 그래서 삶에 수많은 상처와 아픔이 생기고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왔는데, 하나님은 야곱에 대해서 계속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축복의 통로로 여전히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장차 있을 출애굽이라는 큰 역사의 시작은 요셉에서부터가 아니라 야곱의 애굽 입성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험악했다’고 한숨짓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험악한 세월 가운데서 단 한 순간도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의 젊은 날, 힘이 넘치고 꾀가 넘치던 시절에 감당하지 못했던 그 중요한 일,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증거하는 일을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는 이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계신 것입
니다.
야곱의 이 고백은 아들 요셉에게서도 계속 됩니다.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자신들이 동생 요셉에게 남긴 상처와 악행 때문에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0) 그는 지금 “형님들은 나를 미워하고 고통을 주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형님들은 내게 악을 행했습니다. 형님들은 내 삶에 큰 상처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상처에 대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눈물에 대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썩고 문드러진 상한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상처 가운데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형님들의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내게 남은 상처를 통해 역사하셔서 오늘날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나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형님들은 두려워마십시오. 내가 형님들과 자녀들을 보살피겠습니다.” 비교할 수없는 험악한 삶을 살았던 요셉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증거하는 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만날수록, 길을 걸어갈수록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슬픔과 눈물이, 분노와 한숨이 가득합니다. 사람마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눈물 흘리며 삽니다. “누구나 어디 한쪽이 문드러진 채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답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절망하고 그렇게 사라져 갈 것입니다. 우리의 절망은 그냥 절망이요, 우리의 눈물은 그냥 눈물이며, 우리의 상처는 점점 썩고 곪아서 나를 죽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것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눈물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이 내게 임한, 우리들에게 선포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상처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험악한 인생이 복을 전하는 인생이 됩니다. 내 험악한 세월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내 눈물과 한숨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함께 하면 나보다 아픈 사람들을 향한 큰 사랑과 은혜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에 역사하시고, 내 모든 눈물과 한숨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험악한 곳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은혜를 증거하는 통로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안아봅시다. 내 삶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은 없는지, 잊으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 상처는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 아픔 아시지요. 내 눈물 아시지요. 제 마음과 삶에 남은 상처를 아시지요. 저도 참 험한 세월 살았어요. 그런데 하나님, 저도 야곱처럼 축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나와 함께 해주세요. 하나님, 내 상처와 눈물에 함께 해주세요. 하나님,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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